윤석열·김건희 부부 무속이 그리스 비극 ‘라이오스’에 등장하는 이유

2025-11-12

“한 예언자가 떠들어댄 말이 한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게 된다면 누가 나라를 통치하게 되는 걸까요? 손바닥 한가운데에 ‘왕’자를 써라, 멀쩡한 궁전의 터가 안 좋으니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라도 궁전을 강 근처로 옮겨라, 백성들이 말을 잘 안들으면 총구를 겨눠서라도 혼을 내주어라! … 신의 예언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사실 신의 예언이라는 건 내 안에서 너무나 간절하게 욕망하던 것들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요?”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비극적인 인물인 오이디푸스는 ‘자기 실현적 예언’으로 유명하다. 그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운명에서 벗어나려 했기 때문에 그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지난달 국립극단에서 막을 올린 5부작 연극 <안트로폴리스>의 2부 <라이오스>는 오이디푸스가 ‘왜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밖에 없었나’ 그 근원을 따라가본다. 5부작 중 유일하게 원작 각색이 아닌 창작 희곡인 이 작품은 기존에 이름만 언급되던 ‘라이오스’라는 인물에 주목한다. 오이디푸스의 아버지인 그가 테베의 왕위에 오르기까지 전사를 재구성해 “비극과 폭력이 왜 계속되는지, 이를 우리가 끊어낼 수 있는 지에 대해 묻는다.”(김수정 연출)

지난해 불법 계엄으로 자멸한 윤석열을 두고 ‘자기 실현적 예언’이 이뤄졌다는 풍자가 이어졌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손바닥에 쓴 ‘왕’자 때문에 무속 논란에 휩싸인 윤석열은 급작스럽게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옮겨 무성한 추측을 낳았다. ‘청와대에 들어가면 죽는다’는 무속인의 조언을 듣고 이전을 결정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그의 임기 동안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논란은 확산했다.

<라이오스>에선 테베의 왕 라이오스와 그의 부인 이오카스테의 이야기를 윤석열, 김건희 부부와 교차시켜 동시대적 맥락을 부여하기도 한다. 단순히 옛 이야기를 무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비추어보는 거울로, 고대의 목소리를 현재로 불러오는 것이다. <라이오스>에 나오는 신화 속 이야기는 오늘날의 세계와 이어지고 맞물려 광기와 폭력으로 얼룩진 역사가 현대에도 반복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1인극인 <라이오스>는 이야기꾼의 실감나는 말 걸기로 관객에게 시연된다. 배우 전혜진은 라이오스, 이오카스테, 예언자 피티아, 테베의 시민 등 18역을 솜씨 좋게 넘나들며 관객에게 ‘질문’한다. “그런데 그게 정말일까요?” “뭐가 진짜인지 우린 알 수 없죠.” 대단히 인간적인 사건사고에 신화라는 외피를 씌웠던 것이 아닌지, 관객들을 ‘진실 규명’에 동참시키는 것이다. 그 비극이 실제로는 라이오스가 자기를 구해준 은인을 배신했기 때문이 아닌지, 자신의 아들을 잔혹하게 버렸기 때문이 아닌지, 애초에 그의 집안이 대대로 폭력으로 점철되었기 때문이 아닌지 생각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더 나아가 라이오스가 욕망한 권력이 시민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던 것처럼, 오늘의 지도자 또한 오만한 판단으로 국민들에게 혼란을 안겨주었다. “과거나 지금이나 다른 것 같지는 않네요”라는 전혜진의 대사에서 그리스 비극을 ‘지금 여기’의 이야기로 읽게 된다.

“결국 인간은 신의 예언을 피해 갈 수 없었던 걸까요? 신의 예언? 근데 신이라는 건 누가 만들어낸 걸까요? 이해할 수 없는 이 세상을 감히 누가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인간이 하지 못한다면.” 명동예술극장에서 2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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