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에서 신원 미상의 ‘남자’가 발견됐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확인된 사실은 이렇다. 1600여 년 전에 무덤에 묻혔고 이제 남은 신체는 치아 몇 개뿐이다. 치아를 통해 파악한 결과 남자는 30대 전후인 데 상당한 고위 신분이고 또 부자로 판단된다. 그의 소유물은 금관의 초기 형태 금동관, 금 귀걸이, 철제 환두대도(고리자루큰칼), 사람과 말의 철제 갑옷과 투구, 다량의 그릇, 그리고 시종으로 보이는 순장자 한 명이다.
국가유산청과 경주시는 경주 황남동 120호 무덤 일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4세기 말~5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을 새롭게 발견했다며 20일 현지에서 기자 간담회를 가졌다. 국가유산청은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과 상황을 고려할 때 당시 왕 아래 최상위급 신분의 장수 무덤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봉분은 동서로 10.6m, 남북으로 7.8m 규모로 국가유산청은 ‘경주 황남동 1호 목곽묘’로 이름 붙였다.
무덤은 나무로 짠 곽 안에 시신과 부장품을 안치하는 형태의 목곽묘(덧널무덤)다. 현재 우리가 경주에서 보는 대부분의 무덤은 목곽분에 돌을 쌓은 ‘적석목곽분(돌무지덧널무덤)’이다. 신라 무덤이 목곽묘에서 적석목곽분으로 발전한 것으로 추정됐지만 실제 사례를 발견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확인됐다. 신라 무덤을 연구해온 심현철 계명대 사학과 교수는 “황남동 1호 목곽묘는 신라 고분의 변천 과정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또 무덤에서는 주인공이 묻힌 ‘주곽’ 밑에 순장자가 묻힌 ‘부곽’도 있어 관심을 모았다. 순장자는 이웃 가야에서는 많이 나왔지만 신라 무덤에서는 그동안 확인되지 않았다. 신라가 순장을 금지하는 법령을 반포했다는 기록은 있는데 확실한 인골 사례가 처음 나온 것이다. 순장자는 키가 160~165㎝이며 나이 등 다른 부분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주인은 손발을 가지런하게 하고 반듯이 누워 있는 데 비해 순장자는 사선으로 눕고 팔을 펴고 다리는 ‘O’자로 벌린 채 있는 것도 주목된다. 순장자는 죽은 후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발굴은 앞서 황남동 120호 무덤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추가 확인 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주 대릉원 일원에 있는 황남동 120호 무덤은 일제강점기에 그 존재가 알려졌으나 이후 민가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훼손됐고 서서히 잊혔다. 국가유산청과 경주시는 2018년부터 일대를 발굴 조사해 북쪽에 위치한 120-1호 무덤과 남쪽의 120-2호 무덤을 추가로 확인했고 다양한 유물을 찾아낸 바 있다.
이번에 조사한 무덤은 120호 무덤의 아래쪽 지층, 정확히는 북쪽 호석(둘레돌) 부근 아래쪽 지층에서 발견됐다. 즉 ‘황남동 1호 목곽묘’가 먼저 묻혔고 대략 100년 뒤에 ‘황남동 120호 적석목관분’이 조성됐다는 의미다. 이종훈 국가유산청 역사유적정책관은 “기존에 무덤이 있는 곳에 왜 연이어 무덤을 조성했는지는 연구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무덤에서는 일부만 남기는 해도 금동관이 나왔다. ‘신라 왕경(경주) 내에서 발견된 가장 이른 시기의 금동관’으로 추정됐으며 신라 금공예 기술과 장신구의 초기 형태를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갑옷과 투구는 신라 중장기병의 실체와 함께 당시 긴밀했던 고구려와의 연계도 밝혀줄 수 있다. 순장자 인골 자료는 신라 시대 장례 풍습에 있어 실증적 자료이기도 하다.
국가유산청은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맞춰 이달 27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엿새 간 발굴 조사 현장과 유물 일부를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