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절염 유전자 치료제인 ‘인보사케이주(Invossa·인보사)’의 성분을 속인 혐의로 기소된 이웅열(68)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이 29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4부(부장 최경서)는 약사법·자본시장법 위반 등 7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회장에게 모두 무죄 및 면소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날 선고와 함께 “과학 분야에 대한 사법적 통제는 어떻게 진행돼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볼 문제”라는 화두를 던졌다.
“식약처 2017년 허가, FDA 임상 과정서 착오 인지”
인보사는 관절염 치료 주사액이다. 연골세포가 담긴 1액과 연골세포 성장인자(TGF-β1)를 도입한 세포가 담긴 2액을 섞어 주사한다. 문제가 된 건 2액이다. 코오롱생명과학 측은 2017년 국내 판매 허가를 받을 당시 태아신장유래세포주(GP2-293세포)를 통해 생산한 TGF-β1 유전자를 연골세포에 삽입해 2액의 주성분을 만들었다고 밝혔는데,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얻는 과정에서 주성분이 태아신장유래세포주 그 자체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태아신장유래세포주는 종양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알려졌다. 결국 2019년 5월 식약처는 인보사 유통과 판매를 중단하고 코오롱생명과학과 이 전 회장 등을 형사 고발했다. 검찰은 수사를 거쳐 2020년 1월 이 전 회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2017~2019년 식약처 허가와는 다른 성분으로 인보사를 제조·판매하고(약사법 위반·사기), 2015년 FDA의 임상중단 명령 사실 등을 숨기고 2년 뒤 코오롱티슈진을 코스닥에 상장한 혐의(자본시장법 위반) 등이 적용됐다. .
이날 선고는 2020년 1월 기소 후 약 4년 10개월 만에 나왔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인보사 2액의 세포 성분이 신장유래세포라는 사실을 식약처 품목허가나 티슈진 상장 이전에 이미 인지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우선 인보사가 이미 2017년 7월 식약처의 판매 허가를 받은 점을 고려했다. 재판부는 “시험을 거쳤다는 사실은 의약품이 품목허가를 받았다는 정당한 믿음을 줄 수 있다”며 “공소사실이 인정되려면 실제 의약품에 대한 시행 검사는 요식행위에 불과한 것이 돼 수긍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분 착오에 대한 인식 시점은 최소 (FDA에 최종검사 결과를 통보한) 2019년 3월 30일 이후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코스닥 상장 과정에서 2015년 있었던 FDA의 임상중단 명령(clinical hold·CH)을 조직적으로 은폐한 적 역시 없다고 결론냈다. 재판부는 “오히려 CH의 존재를 명시적으로 알리고 내용을 비교적 상세하게 고지한 사실이 확인된다”며 “CH의 의미 역시 모든 임상 절차 중단이 아니라 투약을 이후에 하라는 것”이라며 축소해석해야 한다고 봤다.
재판부 “한국·미국 조치 사뭇 달라…이 소송의 의미 뭔가”
재판부는 선고 말미에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보호한다는 관점에서 인보사의 제조·판매를 중단하고 그 원인을 파악하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면서도 “그런데 그 이후 우리나라와 미국의 조치와 진행 경과는 사뭇 다르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미국 FDA는 사람에 미치는 영향과 안전성에 대해 과학적 관점에서 차분히 검토했고, 우려가 해소됐다고 보고 임상 시험을 승인했다”며 “반면 한국에서는 품목허가 취소 후 현재까지도 그 처분의 강도를 다투는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고, 형사재판이 수년간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판결이 최종적으로 유지될 것인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만일 최종 판단이 이 법원 판단과 동일하다면 수년에 걸쳐 막대한 인원이 투입된 이 소송의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과학 분야에 대한 사법적 통제는 어떻게 진행돼야 하는지는 깊이 생각해볼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날 선고로 인보사 투약 환자들이 제기한 민사 소송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다수의 민사재판부가 이 사건 결과를 기다리기 위해 진행을 보류하고 있는 상태다. 피해환자 대리인 측 엄태섭 변호사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민사에서는 고의뿐 아니라 과실 역시 위법성 판단의 근거가 되므로, 코오롱 측의 과실을 입증해 배상 책임을 지울 것”이라고 예고했다.
검찰은 이날 선고 직후 “증거에 대한 평가, 관련사건 진행 경과 등에 비추어 법원의 판단을 바로 수긍하기 어려워, 검찰은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한 후 항소를 적극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