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금이 영어로는 펜션(pension) 또는 어뉴이티(annuity)다. 둘은 의미가 다르다. 펜션은 연금제도 자체를, 어뉴이티는 노후에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현금을 뜻한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젊은 시절 축적한 자산을 노후 현금흐름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연금화(annuitization)라고 한다.
2차 베이비부머 세대(1964~1974년생)가 작년부터 본격적인 퇴직 연령인 60세에 도달하면서 한국에서도 연금화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주택연금을 통한 부동산의 연금화, 퇴직금의 연금 수령 전환 등이 대표적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연금수령 비율은 2020년 말 28.4%(금액 기준)에서 2023년 말 49.7%로 늘었다. 다만 현행 통계는 일시금이 아닌 모든 지급 방식을 연금 수령으로 분류하고 있어 정확성에 한계가 있다. 일시금을 10회로 나눠 지급하는 것을 진정한 의미의 연금(annuity)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노후에 양대 재무 리스크는 ‘장수 리스크’와 ‘인플레이션 리스크’다. 장수 리스크는 예상보다 오래 살아서 노후 자산이 고갈되는 위험이다. 60세 퇴직자가 90세까지 생존할 것으로 가정하고 자산 5억원을 30년간 균등 분할해 월 139만원씩 사용한다면, 90세 이후에도 생존할 경우 소득원이 사라지게 된다. 인플레이션 리스크는 지속적인 물가상승으로 고정소득의 실질가치가 줄어드는 위험이다. 월 300만원의 고정연금을 받는 상황에서 연 3% 물가 상승률이 지속된다면, 10년 후 동일 금액의 실질가치는 223만원 수준으로 하락한다.
이 두 리스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소득 보장 체계를 구축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연금화가 달성된다. 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으로 구성된 우리나라의 ‘3층 연금 체계’에서 국민연금은 종신 지급과 물가 연동 인상 기능을 통해 두 리스크를 모두 커버한다. 미국과 호주 등 선진국에서는 종신연금 상품과 연금 투자 상품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구조를 통해 양대 리스크를 동시에 관리하는 정교한 연금화 시스템을 발전시켜왔다.
우리 퇴직연금제도가 단순한 분할 지급을 넘어 진정한 연금화로 발전하려면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 현재 제도는 일시금 대신 분할 지급을 유도하기 위해 연금 수령 한도를 설정하고, 이 한도 내에서 수령하면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 그러나 수령 기간이 10년 내외로 제한돼 있어 연장된 기대 수명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 수령 기간을 20~30년 또는 종신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펜션, 어뉴이티, 현금화 등 개념이 불명확하다. 연금개혁을 위해서는 용어 정의부터 제도 설계까지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신민영 신영증권 연금사업부 이사 경영학(연금금융)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