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에서 바둑은 인기 스포츠 중 하나다. 당연히 바둑 기사들에 대한 관심도 많고, 팬도 많다.
중국의 최대 라이벌이라면 당연히 한국이다. 신진서 9단, 박정환 9단 등 세계 무대에서 굵직한 성과를 내왔던 한국 기사들에 대한 관심도 당연히 높다. 그리고 이들을 동경하며 달려오는 팬들의 숫자도 제법 된다.
제27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이 열리고 있는 중국 칭다오 농심공장, 그리고 기사들이 숙소로 쓰고 있는 쉐라톤 칭다오 자오저우 호텔에는 매일 한국 기사들에게 사인을 받으려고 하거나 같이 사진 한 장 찍으려는 팬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멀리서는 시안에서 3시간 가까이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팬들도 있다”는 것이 한국기원 관계자의 말이다.
이번 농심신라면배에 나서는 한국 기사들 중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역시 한국 바둑의 ‘쌍두마차’ 신진서와 박정환이다. 안성준 9단은 “이번 뿐만이 아니다. 중국에 갈 때마다 항상 두 사람에게 사인을 해달라고 찾아오는 팬들이 많다”고 말했다. 외모, 바둑 실력, 훤칠한 키 등 어디 하나 빼놓을 곳이 없는 두 사람이다보니 팬들에게 둘러싸이는 것도 일은 아니다.
워낙 팬들이 많다보니 이따금씩 곤혹을 겪는 경우도 있다.

지난 2일 농심신라면배 사전 기자회견이 끝난 뒤 부채를 들고 찾아온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만찬장으로 이동하던 신진서는 기자회견장 문밖을 나오자마자 또 한 무리의 팬들을 마주쳤다. 그런데 이들이 들고 온 것은 다름 아닌 신진서의 자서전 ‘대국’이었다. 지난해 출간한 ‘대국’은 현재 중국어로 번역이 돼 중국에서도 출간이 됐다.
문제는 자서전이 한 두권도 아니고, 스무 권 가량되는 ‘어마어마한’ 양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잠시 움찔한 신진서였지만, 워낙 거절을 못하는 착한 성격인지라 테이블에 앉아 곧바로 사인을 해주기 시작했다. 덕분에 졸지에 현장이 ‘사인회’가 되버렸다. 만찬 시작까지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신진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한국기원 관계자가 달려왔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가끔은 팬들이 재미있는 요구를 하기도 한다. 강동윤 9단에 따르면, 한 중국 팬이 알없는 안경을 가져와 써달라고 부탁하고는 같이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강동윤은 입단 후 시력 때문에 안경을 썼다가 몇 년전 라식 수술을 하면서 안경을 쓰지 않게 됐는데, 이 팬은 ‘안경을 쓴 강동윤’이 더 멋있다며 부탁을 한 것이었다.
이와 함께 강동윤은 중국에서 겪은 다른 황당한 사례도 꺼냈다. 그는 “한 번은 팬이 사인을 해달라고 하는데, ‘강동윤’이 아니라 ‘강동원’으로 해달라고 했다”며 “아마 사인을 가져가서 다른 사람들한테 강동원한테 사인받았다고 자랑하려고 했던 것 같다”며 껄껄 웃었다.
가끔은 터무니없는 일이 생기기도 하지만, 이런 중국 팬들의 관심은 바꿔 말하면 중국 팬들에게 있어서 한국 바둑 기사들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적어도 이들에게 한국 바둑 기사들은 ‘한류 스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