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은 여윳돈

2025-12-02

은행앱 계좌 잔액에 예상외로 적지 않은 금액이 들어 있었다. 오래전에 출간한 책이 증쇄되면서 인세가 입금된 것이다. 계획에 없던 여윳돈은 마음을 웅장하게 만들었다. 겨울 여행을 갈지, 외투를 한 벌 장만할지, 일단 오늘 저녁 소고기부터 굽고 볼지.

이렇게 무엇을 할까 하는 즐거운 궁리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은 낯선 느낌을 주었다. 문득 얼마 전 ‘의욕이 없어서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며 찾아왔던 30대 여성이 떠올랐다. 그녀는 회사에 다니며 맡은 일은 큰 무리 없이 해냈고, 성과도 나쁘지 않아 매년 중간 고과 인센티브를 받았다. 대인관계도 무난했고 혼자 살긴 했지만, 그렇다고 생활이 엉망진창인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남들처럼 퇴근 후 운동을 하거나 주말에 박물관에 가고,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는 삶은 아니었다. 집에 오면 씻고 정리하고 쉬는 게 전부인 일상을 되풀이하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져, 스스로를 자책하며 눈물을 글썽이곤 했다. 회사에서 맡은 일은 책임감 있게 해내고 있지만, 의욕이 없어서 이러다 뒤처지는 건 아닐지 걱정이 컸다. 이분은 우울증으로 인해 의욕이 없는 것이었을까?

“의욕은 평소에 없는 게 정상이에요. 가끔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대답한 내용이다. 실은 나도 의욕이 없는 날이 많고 종일 진료를 본 날이면 귀가 후 쉬고 싶은 마음뿐이다. 의욕은 어쩌다 하루 있는 것이지, 매일 의욕이 차올라와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게 아닌가 싶다. 의욕은 “무엇을 하고자 하는 적극적 마음”이다. 그런데 기본적인 일을 해내는 것만으로도 내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선뜻 원래 하던 일이 내키지 않을 때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일에 의욕이 없다”고 말하곤 한다. 언덕을 앞에 두고 액셀을 밟아도 차에 속도가 안 붙는 그런 상황과 같다. 이걸 극복하는 것은 조금 더 힘을 주면 된다.

한편 적극적인 의욕이란 조금 다른데,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지만, 새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상태’에 가깝다. 외국어 공부나 운동을 새로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 때와 비슷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여분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마치 여윳돈이 생기자 무엇을 해볼까 궁리하게 되는 것과 같다. 우리의 일상은 생활비 통장처럼 월급날이 다가오면 잔액이 거의 남지 않도록 짜여 있다. 그러니 여윳돈 같은 에너지의 여유분이 늘 넉넉할 수는 없다. 에너지에 여유가 있어야 비로소 의욕이 발동하는데, 늘 충만하지 못하니 스스로를 ‘의욕 없는 사람’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병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그분은 우울증이 아니었고, 의욕이 없는 것도 문제는 아니었다. 가끔 아슬아슬한 기분을 느끼기는 했지만 병리적 징후는 없었다. 다만 의욕이 없는 상태를 ‘무기력’으로 착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무기력은 머리로는 해야 할 일을 알면서도 몸과 마음이 전혀 따라오지 않아 실제로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구간을 말한다. 그 정도의 무기력에 빠지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도 우리는 의욕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자신을 무기력하다고 단정한다. 그러나 의욕과 무기력 사이에는 꽤 넓은 정상 구간이 있고, 거의 모든 사람이 그 구간 안에서 하루를 산다. 의욕의 부재는 아쉬운 일일 뿐, 병적인 결함이 아니다.

언제나 신나고 의욕이 넘쳐야 정상인 것은 아니다. 그럴 때는 ‘요즘 컨디션이 좋구나’ 하고 여겨도 충분하다. 일을 무리 없이 마치고, 해냈다는 성취를 느끼며 무심히 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괜찮은 일상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그 일상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사실은 많은 에너지가 드니까. 그러다 여윳돈이 생기듯 에너지가 차오를 때, 비로소 의욕이 느껴진다. 그 순간을 지렛대 삼아 새로운 경험을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무기력은 경계해야 하지만, 의욕이 없다고 자책하기보다는 의욕이 생기면 감사한 마음으로 기쁘게 받아 쓰면 된다. 의욕은 언제나 충만한 상태가 아니라, 가끔 나타나는 순간이다. 마치 여윳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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