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불어민주당이 14만5000명 경찰의 수장인 경찰청장을 장관급으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법안을 발의했다. 우리나라 치안을 담당함과 동시에 공무원 조직 중 가장 큰 규모를 갖고 있는 경찰의 수장이 차관급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일각에서는 검찰개혁에 나선 민주당이 검찰과의 기싸움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 경찰을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19일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달 17일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등 민주당 의원 17명은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들은 “현행법 상 치안총감인 경찰청장은 차관급으로 돼 있다”며 “그러나 검경 수사권 조정 등으로 경찰의 책임이 커진 만큼 경찰이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여 행정 조직에 휘둘리지 않고, 검찰과 균형을 이루고 상호 견제하며 독자적으로 경찰사무를 수행하며 국민안전·치안 문제가 국가 주요정책에 신속·효율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고 발의 이유를 밝혔다.
정 의원 등은 “경찰청장인 치안총감을 장관급으로 치안정감을 차관급으로 승격하는 등 경찰 보수체계 개편 등을 통해 국가경찰의 위상을 높이고, 치안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해당 법안 제14조 제11항·12항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제11항은 ‘경찰청장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장관급 공무원의 봉급과 그 밖의 보수를 받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12항은 ‘경찰청장은 필요한 경우 국무회의에 출석해 발언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그간 국가 치안을 전면에서 담당하고 있는 경찰 조직의 수장이 차관급 대우를 받아 국무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는 등 형평성 문제가 지속해 제기돼왔다. 경찰과 수사기관의 쌍두마차 격인 검찰의 경우 검찰총장이 장관급 대우를 받는다는 점에서 더욱 그 격차가 두드러지게 보인다는 것이다.
경찰청장의 장관급 격상은 여야를 막론하고 꾸준히 추진되던 과제다. 이번에 대표 발의한 정 의원의 경우 지난 2020년 6월에도 여당 의원 13명과 함께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 책임이 커졌다”며 장관급 격상을 위한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 또한 지난 202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대통령이 되면 경찰청장의 장관급 직급 상향은 반드시 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경찰청장 장관급 격상이 이뤄지면 비단 사기의 문제 뿐만 아니라 인사 적체와 성과급 기근에 허덕이는 경찰 조직 전반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해양경찰청 조직을 제외하고 치안총감은 경찰 조직 내 경찰청장 1명 뿐이다. 차관급 바로 아래 대우를 받는 ‘경찰 2인자’ 치안정감도 7명에 불과하다. 하다 못해 일선 경찰서장에 해당하는 ‘경찰의 꽃’이라고 불리는 총경 계급의 경우 모든 경찰의 꿈이라고 불릴 정도로 경쟁률이 치열하다. 조직 규모에 비해 고위직 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여기에 승진 적체로 인해 경정 아래 계급인 경감과 경위까지 시험심사승진이 아닌 ‘근속승진’ 제도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계급의 현원이 정원 대비 경감은 1만7342명, 경위는 2만456명 많은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반대로 경사 아래 계급은 현원이 줄어가고 있다.
이로 인해 현원이 아닌 정원을 기준으로 편성되는 성과급을 분배하는 과정에서도 불합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 조직의 현원이 정원보다 많을 경우 초과된 인원만큼 성과급이 깎이기 때문에 올해 경찰 공무원 성과급의 조정률은 88.3%로 사상 처음으로 90% 아래로 떨어짐과 동시에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원래 받아야 할 성과급이 100만원이었다면 실제 손에 떨어지는 금액은 88만3000 원이라는 것이다. 경찰의 경우 성과급 대상 현원이 정원보다 1630여 명 더 많다.
일각에서는 경찰청장이 장관급으로 격상되면 고위직의 수도 늘어나 아래에 있는 10개 계급의 인사 적체 등 각종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간 경찰은 지속적으로 경찰청장 장관급 격상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무산돼 왔지만, ‘이번에는 혹시’라는 기대감도 내부에서는 흘러나오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검찰 해체에 경찰을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예비후보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를 끌어안는 조직인 ‘중대범죄수사청’을 만들고 수사를 전담시키는 한편, 검찰청을 기소 기능만 남긴 공소청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친명계’로 분류되는 정 의원이 이에 발맞춰 검찰의 힘을 빼기 위해 경찰의 권력을 확대하는 취지의 법안을 발의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과거에도 민주당은 경찰청장을 격상시키고 검찰총장을 차관급으로 끌어내리는 법안을 동시에 발의했다 흐지부지 된 바 있다.
한 고위급 경찰 관계자는 “경찰청장의 위상을 높이면 14만 경찰 조직의 사기가 오르는 것은 물론 실질적인 처우 개선까지 이뤄질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이러한 법안 추진이 정치적 행위가 아닌 진정으로 경찰 조직을 위한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 정치권에서 장관급 격상을 빌미로 경찰에게 목줄을 채워 입맛대로 활용할 수 있게 하면 안하느니만 못하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