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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4

끝이 안 보이는 농사와 결별하기

 기후 변화와 농업의 불확실성 속에서 농부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맞이한다. 기후 이변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금사과나 금상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농부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분명 큰돈을 만져보지도 못하고 엉뚱한 오해만 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일해도 하늘이 허락해야 비로소 수확물을 얻을 수 있고, 그나마 제값을 받기가 쉽지 않은 게 우리네 농촌 현실이다. 본앤하이리 정선진 대표는 이런 농촌의 고질적인 구조 문제가 늘 가슴 아팠다.

 정 대표는 고향 임실에서 완주 하이리로 시집와서 시아버지 곁에서 농사일을 배우면서 실패도 많이 했다. 땅을 제대로 모르고 시작한 농사는 신통치 않았다. 땅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시도한 농업은 실패를 반복했다. 어느 해는 고생 끝에 수확한 농작물이 박스값도 건지지 못했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땅을 제대로 이해하자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드디어 땅과 함께 하는 진짜 농부가 된 것이다.

 완주 용진에 위치한 하이리 마을의 대표 상품은 상추이다. 이 마을 사람 대부분이 상추를 재배한다. 하지만 정 대표는 상추 대신 레몬에 승부를 걸었다. 이전까지 포도, 방울토마토 등을 거쳐 최종적으로 안착한 것이 레몬이다. 시험 삼아 유자와 한라봉을 심었던 것이 가능성을 보이자 본격적으로 레몬에 집중하기 했고, 그 결과는 사람들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돌아왔다.

 정 대표는 단지 레몬을 재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카페를 열어 우리 밀로 만든 빵과 레몬으로 만든 각종 가공 농산물을 팔았다. 이제 사람들은 레몬 농장을 구경하거나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한 후 자연스럽게 매장에서 신선하고 맛있는 빵과 본앤하이리의 주변 풍경을 음미하며 여유를 즐긴다. 단순 생산단계의 1차 산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고부가치를 창출하는 6차 산업의 틀을 안정적으로 구축한 결과이다.  

선진지 견학은 나를 돌아보는 계기였다

 정 대표는 하이리로 시집온 후 내리 몇 년을 농사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농사일은 생각 이상으로 노동 강도가 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체력의 한계에 직면했다. 불안정한 농산물 수급 구조는 그녀를 더욱 힘들게 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자 몸과 마음에 조금씩 금이 갔다. 그러던 중 운명처럼 해외 선진지 견학의 기회가 생겼다. 처음 만난 네덜란드 농장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방문했던 농장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단순한 상품 판매가 아니라 농장의 건강함과 여유로움을 관광상품화하는 모습이 새롭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벨기에의 농가 체험도 정 대표에게는 신선했다. 사설로 운영하는 딸기 박물관은 딸기와 관련하여 온갖 자료를 축적하고 있었다. 견학 도중 건강하고 싱싱한 베리류를 그 자리에 따 먹으라고 권유하는 모습에서 농부의 진심과 상품화 가능성을 발견했다. 품질에 대한 자부심과 그동안 정성을 기울여 왔다는 농부의 긍지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딸기 하나로도 충분한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정 대표에게는 깊은 인상과 함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또 다른 충격은 현지의 농가 환경이었다. 농촌임에도 상상 이상으로 깨끗한 환경을 보면서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 대표는 자신이 뿌리내리고 있는 하이리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하이리로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주변 환경을 개선하는 일이었다. 그와 함께 그동안 고민해 왔던 농장의 정체성 찾기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이처럼 선진지 견학은 그녀에게 자신을 돌아보고 농촌의 삶을 더욱 만족스럽게 만드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는 그녀에게 다가온 행운의 시작이었다.

관계를 더 생각하는 농촌교육

 2021년부터 정 대표가 운영하는 ‘꿈드림영농조합법인’은 사회적 농장으로 선정되어 사회약자를 위한 본격적인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 2017년부터 완주군의 특수 발달장애 청소년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해 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신은 있었다.

 특수 발달장애 청소년은 사회성이 떨어지거나 자존감이 낮은 경우가 많다. 정 대표가 처음부터 이벤트성 행사가 아니라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모종을 심고 키우고 수확하는 일련의 과정을 기획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프로그램 내용도 농업 외에 염색, 목공 등도 포함시켜 아이들의 흥미 유발과 동기 부여에 신경 썼다. 이 과정을 하면서 아이들은 좀 더 건강해졌고 예비농부로서 자신이 애정을 기울인 농작물에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다. 최근까지 완주군 6개 학교의 학생들이 이 축복받은 프로그램에 동참했다.

 올해처럼 농작물이 수난을 당한 해가 없을 것이다. 폭염 때문에 몇 번이나 다시 작물을 심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하지만 아이들이 키운 농작물은 달랐다. 직접 보니 아이들의 정성 때문이었는지 보기에도 실한 배추가 밭에 한가득이었다. 텃밭에 씨를 파종하고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은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 건강한 농작물을 보면서 아이들의 심성도 그만큼 실하게 여물었으리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정 대표는 체험 프로그램을 비롯하여 다양한 형태의 교육 프로그램에도 진심을 다한다. 사람들이 우리의 건강한 먹거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농촌을 좀 더 이해하고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체험장에서 자신들이 만든 건강한 음식을 경외와 뿌듯함으로 쳐다보는 이들의 눈빛을 보면서 정 대표는 이 프로그램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농촌의 편안함을 팝니다

 정 대표는 본앤하이리와 레몬농장이 이곳을 찾는 사람에게 고향집이나 사랑방과 같은 친숙하고 편안함으로 다가왔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지금 카페에서 같이 일하고 있는 직원들과도 오래 호흡을 맞추면서 그들이 이곳에서 삶에 만족할 수 있도록 하고 싶은 것도 그와 같은 바람이다.

 최근 정 대표는 기존의 농업 방식에서 벗어나 서비스에 더 중점을 두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 그동안 농장과 카페, 그리고 교육장을 운영한 것도 그 고민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정 대표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농업과 서비스의 접점 찾기를 지속적으로 모색해 온 것도 이 모델이 우리 농촌의 바람직한 미래가 아닐까 하는 바람에서이다.

 그동안 사회적 약자를 위한 교육과정을 개설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정 대표가 새롭게 깨달은 것도 많다. 사각지대에 있는 소외받은 이들에게 도움을 준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그들의 즐거워하고 서로 의지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 대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은 이제 정 대표의 또 다른 가족이 되었다.

 700평을 꽉 채운 호박잎과 탐스럽게 자라고 있는 배추밭을 보면서 정 대표의 꿈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정 대표는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삶을 즐기는 사람이 아닐까. 아마 사람들이 본앤하이리와 레몬농장을 좋아하고 다시 찾는 이유는 한동안 잊고 살았던 건강한 우리 농산물에 대한 믿음 때문일 것이다.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지는 편안함, 그런 점에서 정 대표의 꿈과 우리의 지향점은 참 많이 닮았다.

 장창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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