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전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에서 전후 국제금융 질서를 설계하는 역사적 회의가 열렸다. 44개국 대표단이 모여 3주일간 토론을 벌였다. 글로벌 기축통화와 국제금융기구 창설이 논쟁의 핵심이었다.
기축통화와 국제금융시스템의 주체를 정하는 일은 통화패권을 결정하는 중대한 주제였다. 19세기 기축통화국가인 영국을 대표한 저명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년)는 세계중앙은행 창설과 새로운 국제화폐 도입을 주장했다. 세계대전을 치르며 빚쟁이 국가로 전락한 영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주장이었다. 영연방국가의 지원을 등에 업고 국제화폐의 발행을 증가시켜 통화량이 늘어나면 영국의 외채 부담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에 반해 강력한 국가경쟁력을 바탕으로 세계 최대의 채권국으로 떠오른 미국은 통화가치 안정을 지키는 일이 급선무였다. 미국은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되 그 가치를 금값에 연동시키는 준(準) 금본위제를 지지했다. 열띤 토론 끝에 미국 입장이 관철됐다.
이렇게 탄생한 브레턴우즈 체제는 과거를 반성한 결과이기도 했다. 1920년대 초 독일에서는 통화량 발행에 고삐가 풀려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찾아왔다. 1929년 뉴욕 증시 대폭락 직후 미국이 스무트-홀리 관세법으로 관세를 올린 결과, 대공황이 전 세계로 번졌다. 자국 통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절하해 무역수지를 개선하려는 근린궁핍 정책도 비일비재했다.
브레턴우즈 체제에서 달러와 금의 교환을 의무화하고 각국의 환율을 달러에 고정하자 통화가치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다. 1960년대 전반까지 세계 경제는 골디락스(통제된 인플레와 안정적 성장) 번영을 누렸지만, 이 체제는 오래가지 못했다. 미국이 베트남 전과 복지에 지출할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달러 통화량을 늘렸다. 인플레이션 악화와 무역적자 심화로 달러화 가치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 1971년 달러는 공식적 기축통화 지위를 내놓았다. 환율은 시장이 결정하게 됐다.
이런 진통을 겪으면서도 그 후 자본주의는 공산주의를 이념 경쟁에서 이기고 성장을 거듭했다. 성장의 열쇠인 효율성을 담보하는, 자유무역과 시장경제라는 국제경제 체제의 두 기둥이 건재한 덕분이었다. 그런데 최근 미국 대선 주자들의 인기영합적 공약이 이 근본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카멀라 해리스 후보는 가격 통제를 통해 식료품 물가를 잡겠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관세를 대폭 올려 미국 산업을 보호하고 해외 투자를 끌어들이겠다고 한다. 모두 역사적으로 유해하고 무효하다고 결론이 난 정책들이다. 포퓰리스트 정책이 실제로 집행돼 글로벌 경제를 흔드는 일이 없도록 주시해야 한다.
김성재 미국 퍼먼대 경영학 교수·『페드시그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