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잃은 아이들의 희망이었던 어머니

2024-09-18

(273) 한국보육원 원장 황온순

황온순, 한국전쟁 당시 미군과 함께 전쟁고아 구제

황윤관, 이희영의 후임 제주판관…1542년 도임

황진국, 제주지방재판소 검사·‘영은정기’ 저자

황진식, 조천 항일활동가로 1993년 독립유공 표창

▲황온순(黃溫順):1901(광무5)~2004, 한국보육원 원장. 황해도 연안에서 태어나 1918년 이화학당을 졸업, 만주로 건너가 사범학교에 해당하는 길림성립중학교 3년을 수학 후 귀국, 1927년 이화여전 보육과를 졸업하고 경성법전 출신인 강익하(康益夏)와 결혼하였다.

한국전쟁 직후 미국인 군목 브라이젤과 미 공군대령 헤즈는 유엔군사령부의 수송기 7대로 서울 종로교에 수용한 전쟁고아 907명을 공수 제주농업고등학교에 수용하여 한국보육원(원장 황온순)을 설립했다.

한국전에서 전투기 조종사로 출격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대한민국 무공훈장을, 또 미 공군으로부터 공로훈장을 받은 헤즈는 대구공군기지와 한국보육원을 방문, 당시 고아 20여 명을 상봉하는 감격적인 기회를 가졌다.

바로 유치원 교사로 출발해 원장을 거치면서 1930년 원불교 신자가 됐다. 1938년 전북 이리에서 보화원이란 탁아소를 열어 사회사업을 시작했다.

광복 직후 서울역 앞에 구호소를 열고 일제의 징용에서 돌아온 젊은이들을 위해 구호사업에 힘을 쏟았다. 1950년 6·25 전쟁으로 남편과 외아들 강필국(康弼國)(서울대 국문과 1년)을 잃었다. 동년 12월 27일 이승만 대통령의 특명으로 전쟁고아를 제주도로 공수하게 되었다.

이때 사회부장관 허정(許政)의 추천으로 한국보육원 고문 최승만(崔承萬)을 사회부 제주도분실장으로 임명. 6명의 직원으로 제주남교에 사무실을 설치 이들 전쟁고아와 4·3 이재고아를 위해 구제사업을 맡았다. 1952년 3월 제주에서 한국사회사업연합회를 결성. 회장에 황온순이 뽑혔다.

이때 제주모자원(원장 김정하), 송죽보육원(원장 고수선) 등 도내 보육원 9개소와 모자원 1개소에 수용인원은 1412명이나 됐다. 1957년 서울로 돌아와 중랑천 냇가에 그가 개설한 휘경여자중·고교 자리에서 한국보육원 활동을 계속했다.

그 뒤 그녀는 한국사회사업가협회 부회장으로 뽑혀 국제대회에서 한국대표로 수차 참석한 바도 있다.

또 원불교 수위단의 한 사람으로서 활약했다. 그의 보육원을 거쳐 간 원아는 3000명이 되며 이들 중 500여 명은 친목단체 옥회를 조직. 매년 10월 3일을 홈 커밍데이로 정해 ‘어머니’ 황여사를 찾았다.

구순이 훨씬 넘은 나이에도 매일 원아를 살피며 또 1975년 자신이 설립한 휘경학원의 일도 보살폈다. 그녀는 전쟁고아의 어머니라는 대명사격인 인물로 세계에 알려졌으며 세계 전사상 최초의 고아 공수작전은 그 후 록·허드슨과 여배우 안나 카슈피(인도 출신)의 주연으로 영화화된 ‘전송가’라는 작품의 소재로 나타나서 크게 화제가 됐다.

1967년 5·16 민족상을 받고 이어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여기에 부기할 일은 1999년 10월 1일 공군 창군 50주년 기념행사로 전쟁고아의 아버지로 통하는 예비역 공군대령 헤스(82세)옹을 초청해 방한했다. 실은 1951년 5월 귀국하여 한국전의 경험을 토대로 전송가라는 자서전을 썼고, 이를 통한 수입 6만 달러를 황여사에게 보낸 바도 있었다.

▲황윤관(黃允寬):생몰년 미상, 무신. 제주판관. 무과 급제. 1542년(중종 37) 7월, 이희영(李喜榮)의 후임으로 도임하고 1545년 2월에 체임되었다. 황윤관은 1562년(명종 17)에 전라도 남원부사로 재임한 바 있다.

▲황진국(黃鎭菊):1857(철종8)~?, 검사. 제주지방재판소 소속. 호는 만사. 본관은 창원, 서울에서 태어났다. 1895(고종32) 1년 과정인 법관양성소를 우등으로 졸업, 1898년 법부 주사로 출발, 1901년 한성부재판소 주사로 재임 중 동년 8월 19일 제주목재판소 검사시보로 임명받아 홍종한(洪鍾翰)의 후임으로 부임했다.

그는 1904년(광무8) ‘영은정기’를 지었다. 같은 해 목사 홍종우(洪鍾宇)에 의해 건입동 금산 기슭에 영은정 건물이 준공되자 검사 황진국이 창건기를 직접 쓰고 목판액에 새겨 걸었다. 후일 연농 홍종시(洪鍾時)가 탁본한 것을 최근까지 연농의 손자 만농 홍정표(洪貞杓)가 소장해왔다.

▲황진식(黃鎭式):1900(광무4)~1976, 기미년 조천의 항일 활동. 본관은 상주, 황경룡(黃璟龍)의 아들로 산북 조천리<조천포>에서 태어나 1918년 3월 제주 공립농업학교를 졸업했다.

이들은 일경에 체포됐다. 동년 4월 26일 광주지법 제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으나 공소하여 동 5월 2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1993년 3·1절 기념일에 독립유공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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