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땅 정착도 귀향도 난감… 우크라 난민들 “종전 이후 더 걱정” [우크라 전쟁 3년]

2025-02-23

광주 고려인마을 피신 우크라 난민들

종전 협상 낭보에 “기쁜 일” 눈물 훔치지만

“고향 땅 러 점령지 돼” “폐허 됐는데” 한숨

“종전 후에도 고려인 韓 정착 도와야” 지적

20일 오전 11시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 회관. 우크라이나 난민과 고려인(옛소련에 거주했던 동포)으로 보이는 주민 10여명이 러시아 전통음식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고려인마을에선 매주 목요일 어르신들을 모시고 함께 식사를 하는 ‘고려인 화합의 날’이 열린다. 오전 11시30분이 지나자 나이 든 어르신들을 부축한 주민 100여명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식사 테이블에 앉은 주민들은 서로의 안부를 물은 뒤 고국과 고향 소식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특히 3년째 계속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주도로 끝날 수 있다는 소식에 “너무 기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로 부둥켜안고 고국의 노랫말이 담긴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훔치며 오랜 타국살이와 향수병을 달래기도 했다.

주민 라콜라니브(37)씨는 “남편이 있는 고향에 하루라도 빨리 가고 싶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중남부 헤르손 근처에 살던 라콜라니브씨는 2022년 4월 러시아군이 쏜 포탄이 마당에 떨어져 삶의 터전을 잃었다. 라콜라니브씨는 한국정부의 항공료 등의 지원을 받아 남편, 자녀 3명과 함께 2022년 4월 고려인마을로 피란을 왔다. 금세 끝날 줄 알았던 난민 생활이 길어지자 고려인이었던 남편은 2년 전쯤 홀로 우크라이나로 돌아가 장사와 노동일로 번 돈 일부를 가족에게 보내고 있다.

한때 1000명이 넘었던 고려인마을 우크라이나 난민은 이제 500명이 채 안 된다. 이들은 생계유지를 위해서 처음엔 광주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다가 600여명은 임금을 더 주는 일자리를 찾아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피란민 상당수는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이국땅에 정착할 수도, 그렇다고 오랜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고국에 돌아가기도 어려운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다.

김다리치아나(34)씨는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남편, 자녀 2명과 함께 고려인마을로 와 3년째 피란 생활을 하고 있다. 그의 고향인 자빠로르네는 이미 러시아 점령지역으로 우크라이나로 돌아간다면 러시아인으로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그는 “고향에 있는 부모와 친척의 안부가 걱정되지만, 그 이유만으로 고향으로 돌아가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포탄이 날아다니지 않고 열심히 일하면 돈도 모을 수 있는 한국에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광주에서 일용직 일을 하는 남편 덕에 김다리치아나씨 가족은 다른 피란민보다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종전 이후가 더 걱정이라고 했다. 신 대표는 “고려인마을 난민들은 6개월에 한 번씩 체류 비자를 갱신하는 임시여행 증명서로 지내고 있다”며 “전쟁이 끝나면 비자 연장이 되지 않아 강제로 떠나야 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 대표는 이어 “독립운동 후손인 고려인들을 우리나라가 보듬고 껴안아야 한다”며 “이들이 희망하면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광주=글·사진 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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