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언론사들이 제주항공기 무안공항 사고를 ‘제주항공 참사’로 부르기 시작했다. 사고 명칭이 뭐 중요할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명칭 변경 배경에 사고 수습 방향을 오도하고, 책임 규명을 저해하며, 재발 가능성마저 남겨둘 우려가 숨어있다면 깊이 돌아봐야 할 문제이다. 언론이 사고 명칭을 정할 때 국민의 관심사와 발생 원인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한다. 과거 대형사고 때 언론이 어떤 명칭을 붙였는지 찾아보면 개략적인 기준을 알 수 있다.
1997년 대한항공기가 미국 괌 공항 인근에서 추락했을 때 언론은‘대한항공 괌 추락사고’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1993년 아시아나기가 목포공항에 착륙하려다 해남에 추락한 사고는 주로‘아시아나기 해남 추락사고’라 불렀다. 사고 명칭에 발생 지점을 포함한 것이다.
이는 지금도 그대로다. 연합뉴스와 KBS SBS 등 많은 언론사들이 ‘제주항공 참사’라고 하면서 관련 기사 제목과 내용에 ‘대한항공 괌 추락 사고’ ‘아시아나 해남 추락사고’라는 이름은 그대로 사용한다. 일관성이 없고 부자연스럽다.
이 같은 과거와 다른 작명에 정치적 배경이 의심된다. 사고 직후부터 일부 국회의원들이‘지역감정 유발’등을 이유로 지역명을 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의원들이2022년‘이태원 참사’때 지역 주민 상인들의 피해를 감안해 지역명을 빼자고 주장했던 기억이 없다. 그리고 일부 정치인과 공항 관리 책임자들 외에 무안군민에게 누가 사고 책임을 묻고 나쁜 감정을 갖게 된다는 건지 모르겠다. 혹시 참사 원인 중 공항부지 지정과 운영상 문제를 호도하려는 것 아닌가 의심이 드는 이유이다.
이번 참사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기체 고장일 수도 있고, 가능성은 낮지만 조종 실수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공항을 철새도래지 옆에 짓고, 활주로 250미터 앞에 콘크리트 구조물을 세운 게 큰 위험요인이었다는 점은 지금도 부인할 수 없다. 그 위험요인과 사고의 인과관계를 밝히고, 책임을 규명하고, 그래서 근본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
만약 사고 여객기 소속사에 책임을 덮어씌운다면 그러한 근본적인 수습이 어려워진다. 벌써부터 조짐이 나타나는 듯하여 우려된다. 제주항공 모기업을 대상으로 불매운동이 확산된다는 기사가 각 언론사를 통해 퍼져나가고 있다. 사고 원인이 밝혀지기 전 그런 현상이 나타나면 언론이 먼저 나서 말려야 하지 않는가. 대한민국 언론도 그 정도 상식은 있다고 믿으며 자성을 촉구한다.
사고 여객기 소속사가 희생된다고, 철새가 나는 하늘에서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는 활주로에 대형 여객기들이 안전하게 착륙할 수는 없다. 정치적인 유불리를 따지지 말고 올바른 방향으로 사고 조사와 수습이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