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좋아합니다. 카메라도요

2025-12-11

퇴근 후는 온전히 나를 위한 회복의 시간입니다. 일상에 지쳐 쉬는 방법을 잊은 당신에게, 경향신문 여성 기자들이 퇴근 후 시간과 주말의 일상을 공유하는 [퇴근 후, 만나요]를 연재합니다. 누군가의 사소한 일상이 영감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퇴근 후, 만나요] 사진을 좋아합니다. 카메라도요

패스, 패스, 패스, …이건 체크.

휴가나 주말에 찍은 사진을 노트북에 옮긴다. 노트북 화면에 사진을 띄우고 영 아니면 패스, 볼만하면 체크한다. 체크 된 사진은 ‘Best’ 폴더에 옮겨서 보완 작업을 한다. 포토샵을 켜서 한쪽으로 기울었다면 그만큼 돌려주고 색이 어둡다면 밝기를 올려준다. 이 과정을 마치면 사진 정리가 끝난다. 엄선한 사진은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캡션 몇 문장을 적고 사진과 어울리는 노래까지 골라 올리면 끝이다.

그림과 사진은 ‘화면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라는 같은 고민을 한다. 풍경 그리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사진에도 금방 흥미를 붙였다. 처음에는 핸드폰 카메라로 찍었다. 사진이 잘 나온다는 아이폰이라지만 어딘가 모자랐다. 22살이 되던 해에 소니의 크롭 바디 카메라를 하나 샀다.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집 주변, 번화가 곳곳을 다녔다. 교환학생 신분으로 영국에 갔을 때도 함께 했다. 이제는 어디로 갔는지도 모를 첫 카메라다.

처음 한 사랑이 첫사랑이란 법은 없다. 첫사랑은 소니 풀프레임 카메라 ‘메라’다. 메라와는 하와이, 몽골, 그리스, 아이슬란드 등을 다녀왔다. 몽골에서 메라에 흠집이 났을 때 눈물이 찔끔 났다. “네가 안 다쳐서 다행”이라고 다정히 말해주는 친구에게 “내 몸보다 메라가 더 비싸”다고 답했다.

올해 10월, 메라와 함께 아이슬란드에 가서 많은 풍경 사진을 찍어왔다. 폭포 뒤편을 지나며 물을 잔뜩 먹고 잠시 먹통이 되기도 했지만 금방 멀쩡해졌다. 입이 떡 벌어지는 폭포와 빙하, 야생 동물을 보며 셔터를 계속 누른 탓인가 비슷하면서 약간씩 다른 사진들이 여러 장 찍혀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 친구네 가게에서 생맥주를 마시며 사진을 골랐는데 비슷한 몇십 장의 폭포 사진 중 어떤 폭포 사진이 제일 나은지 찾는데 2~3시간이 걸렸다.

‘순정’이 아닌 ‘튜닝’의 재미를 알게 해준 카메라도 있다. 이름은 ‘메라 투’로 후지필름 풀프레임 카메라다. 몇 년 전부터 사고 싶었던 카메라인데 공식 사이트에서는 품절이라 위시 리스트에 담아뒀었다. ‘메라 투’는 친구와 카메라를 구경하러 간 남대문 시장의 한 가게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귀한 카메라”라며 숨겨 놓으셨던 사장님과의 치열한 흥정 끝에 얻어냈다.

순정이 아무 설정 없이 ‘P 모드’(프로그램 모드) 또는 ‘A 모드’(자동 모드)로 사진을 찍는 것이라면, 튜닝은 촬영 전부터 카메라의 화이트 밸런스, 색감, 그림자 등을 설정하고 촬영하는 것이다. 후지필름 카메라는 ‘필름 레시피’로 유명하다. 사람들이 올려놓은 필름 레시피대로 카메라를 설정하면 필름 카메라로 찍은 것과 같은 결과물을 만들어준다. 별다른 보정 없이도 예쁜 사진을 내놓기 때문에 간편하다. 올해 가을, 은행잎이 흩날리는 정동길을 메라 투로 찍었다. 샛노란 은행나무가 화면에 넘치게 담겼다.

유행하는 2000년대 초반 ‘Y2K’ 감성의 사진을 찍고 싶어 빈티지 디지털 카메라도 두 대 샀다. 두 대 모두 당근마켓에서 샀는데 다행히 고장 없이 잘 쓰고 있다. 첫 번째 디카는 ‘올림푸스 X-930’이다. 한 손에 들어오는 크기라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 좋다. 미국 미네소타로 콘퍼런스 출장을 갔을 때 톡톡히 제 몫을 해냈다. 폭설이 내리던 날, 앞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찍었던 사진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남았다. 두 번째는 ‘캐논 IXY 800 IS’다. 올림푸스보다 화소는 낮지만 인물 사진이 잘 나오는 카메라다. 요즘엔 약속에 나갈 때마다 캐논을 들고 다닌다. 밤에 플래시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으면 제법 ‘MZ’스러운 결과물이 나온다. 소소한 일상을 담기엔 컴팩트 디카만 한 게 없다.

최근에는 영상 촬영에도 흥미가 생겨서 캠코더 한 대를 이베이에서 구매했다. 설명을 제대로 읽지 않고 주문했는데 일본어만 지원되는 캠코더였다. 일본어를 공부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

도랑.

데이터저널리즘팀 기자. 카메라 구하는 능력이 사진 실력을 앞서버린 INTJ.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