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북 충주에서 2023년 구제역이 발생한 이후 2년 만에 전남 영암과 무안에서 구제역이 확인되면서 방역에 비상이 걸렸다. 구제역은 2년 만이지만, 조류인플루엔자(AI)와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은 연례행사처럼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치명적인 동물감염병이 반복해 발생하면서 축산업계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 가축 대량 도살처분으로 축산업이 타격받으면 소비자 물가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이번 구제역은 단순한 방역 실패를 넘어 현행 방역 시스템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백신 접종 관리의 비효율성, 자가접종 제도의 허점, 농장 단위 방역의 비과학성 등 다양한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경방역 강화해 해외유입 막고
농장주치의·주사이력제 도입을
수의직 공무원 처우도 개선해야

가축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국경방역과 농장 관리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일본과 대만은 모든 공항과 항만의 출입구(게이트)에 신발 소독판을 설치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일부 공항에서만 제한적으로 신발 소독판을 설치하고 있다. 소독판을 설치하는 간단한 조치만으로도 해외에서 유입될 가능성이 있는 바이러스 차단에 상당한 효과를 본다.
축산 선진국들과 달리 한국은 해외에 나갔다 들어오는 축산인과 수의사만 대상으로 손 소독과 발판 소독을 하고 있다. 지난해 2782만명이 해외여행을 다녀왔는데, 이들이 해외에서 바이러스를 국내로 옮길 위험은 그만큼 커진다. 가장 기초적인 국경방역이 부실하니 가축 감염병 유입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문제는 더 있다. 한국에서는 50두 이상 가축을 사육하는 농장에 한해서만 자가접종이 허용된다. 이런 방식으로는 백신 접종 여부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워 방역 사각지대를 키운다. 한국은 아직도 농장 주치의 제도를 도입하지 않아 수의사가 농장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없는 구조다. 수의사의 개입이 제한되면서 백신 접종 및 방역 관리가 농장주의 재량에 맡겨진다. 이렇다 보니 재난형 동물감염병 예방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몇 가지 구체적인 개선책을 제안해 본다. 첫째, 국내 모든 공항과 항만의 출입구에 신발 소독판을 배치해야 한다. 개항 초기에는 모든 게이트에 설치했으나 어느 때부터인지 소독판을 철수한 곳이 많다. 입국자들의 보행 동선에 소독판을 깔아 놓으면 되고, 공항 검역 당국이 성의껏 관리하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둘째, 거점 동물병원을 설치하고 농장 주치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유럽연합(EU) 등 축산 선진국들처럼 거점동물병원 수의사가 정기적으로 농장을 방문해 백신 접종 및 방역 상태를 점검하게 해야 한다. 방역 당국은 거점병원을 관리하면 농장의 방역 현황을 신속히 알 수 있고, 질병이 발생하면 즉각 대처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춰야 한다. 이렇게 하면 축산 농가가 더욱 체계적인 관리를 받을 수 있고, 감염병 확산을 조기에 차단할 수 있다.
셋째, 자가 진료를 폐지하고 수의사에 의한 주사 이력제를 도입해야 한다. 지금은 농장주가 직접 백신을 접종하는 방식을 허용하고 있다 보니 정확한 접종 이력을 확인하기 어렵다. 전문가인 수의사가 백신 접종을 담당하고 이를 기록하는 주사 이력제를 도입하면 백신 접종 여부를 정확하게 관리할 수 있다. 방역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정확한 주사 이력을 확보함으로써 지금도 만연한 농장주나 수의사에 의한 거짓 예방 보고를 막을 수 있다.
넷째, 수의직 공무원의 처우를 개선해 방역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 수의직 공무원은 방역과 축산식품의 위생 관리, 동물 보호까지 책임지고 있다. 요즘은 연중 12개월이 특별방역기간이다 보니 제때 퇴근하는 날이 거의 없다. 업무 강도가 과도하게 높지만, 처우는 열악하니 수의직 공무원의 퇴사율이 10%를 넘는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까지 15~30%의 만성적 인력 부족 현상이 되풀이된다. 수의직 공무원의 처우를 개선하고, 충분한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다.
정부는 이제라도 방역체계의 문제점을 개선해 축산업의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은 늦게라도 고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리석게도 같은 위기를 매번 반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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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주형 대한수의사회 회장, 아·태수의사연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