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이 국가 자금을 조금이라도 받은 신규 데이터센터에 중국산 인공지능(AI) 반도체 사용을 의무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AI 칩 자급률을 끌어올려 첨단기술 경쟁을 펼치고 있는 미국에 대항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미국의 AI 칩 금수 조치가 중국을 ‘AI 전쟁’의 승자로 만드는 것을 돕는 일일 뿐이라는 경고를 내놓았다.
5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이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중국 규제 당국은 최근 국가 자금을 지원받은 모든 데이터센터 가운데 공정률이 30% 미만인 경우 반드시 중국산 AI 칩을 사용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에 따라 이미 설치된 외국산 칩은 모두 제거해야 하며 향후 구매 계획 역시 취소해야 한다. 로이터는 “해당 지침이 전국적으로 적용되는지, 특정 성(省)이나 지역에 국한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면서도 “중국 내 대부분의 데이터센터는 어떠한 형태로든 국가 자금을 지원받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중국 정부가 2021년 이후 자국에 지어지는 데이터센터에 투입한 국가 자금만 총 1000억 달러(약 144조 79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조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엔비디아의 첨단 AI 칩 블랙웰의 중국 판매를 금지한 데 따른 맞대응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AI 칩 자급률 제고의 계기로 삼고 있다고 평가한다. 엔비디아가 중국용으로 따로 제작한 AI 칩인 H20의 수출을 트럼프 행정부가 막자 중국이 올 9월 바이트댄스와 알리바바 등 빅테크에 ‘엔비디아 칩 구매 금지령’을 내린 것이 단적인 예다. 그 대신 화웨이와 캠브리콘 등 자국 AI 칩 제조사의 사용을 확대하는 기회로 삼았다는 것이다. 로이터는 “일부 중국 AI 칩은 이미 엔비디아 제품과 견줄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지만 (중국 시장 내) 판매에는 어려움을 겪었다”며 “그런데 정부가 나서서 (국산 AI 칩이) 점유율을 높일 수 있도록 판로를 열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산시증권은 지난해 기준 80%인 중국 내 엔비디아 AI 칩 점유율이 향후 5년 내 최대 50% 수준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영 통신사 중국모바일은 내년까지 건립하기로 한 총 191억 위안 규모의 데이터센터 내 모든 칩을 화웨이 제품으로 채우기로 하는 등 실제 국산화 사례가 포착되고 있다. 베이징과 상하이·구이양 등 중국의 주요 도시들은 수년 내 AI 칩 자급률을 최소 70%, 많게는 100%까지 높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중국의 이 같은 조치에 위기감을 느끼는 쪽은 엔비디아다. 황 CEO는 같은 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주최한 콘퍼런스에 참석해 첨단 칩 금수 조치는 중국의 자급률 제고로 이어져 AI 경쟁에서 중국의 승리를 돕는 꼴이 된다고 경고했다. 미국 등 서방은 칩 산업을 규제하고 있지만 중국은 각종 진흥책을 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황 CEO는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서방은 기술 발전에 대해 냉소주의에 빠져 있으며 미국 각 주(州)들도 규제를 늘리는 추세”라면서 “그에 반해 중국은 에너지 보조금 등 각종 지원을 해 기업들이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AI 칩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중국 간쑤성과 구이저우성·네이멍구자치구 등 데이터센터가 밀집한 지역의 지방정부들은 최근 자국 AI 칩을 쓰는 데이터센터에 최대 50%까지 전기요금을 절감해주는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자국 AI 칩의 전력효율이 엔비디아에 비해 크게 떨어지면서 중국 기술기업들의 전력 비용이 크게 늘어난 데 따른 조치다. 외국 칩을 사용하는 데이터센터는 전기료 인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FT는 “중국이 엔비디아 의존에서 탈피해 미국과의 AI 경쟁에 맞서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한편 황 CEO는 TSMC가 이달 8일 대만에서 개최하는 연례 체육대회 행사에 직접 참석할 예정이라고 연합보 등 현지 매체들이 전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방한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등과 회동한 데 이어 대만에서도 AI 협력 행보를 이어가는 것으로 풀이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