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입성을 노리는 이들이 찾아가는 인물이 있다. 터커 칼슨(55) 전 폭스뉴스 앵커다. 미국에서 '보수의 아이콘'으로 통하는 그는 트럼프 집권 2기에서 '막후 실세'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차기 트럼프 행정부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두 명의 대리인(surrogate)"으로 일론 머스크와 함께 그를 꼽았다.
"트럼프가 현안 논의"…1기 때도 '숨은 입'
고립주의 외교를 추구하고, 이민을 반대하는 등 트럼트와 뜻이 맞는 그는 트럼프 집권 1기 때도 '숨은 실세'이자 '숨은 입'으로 지목됐다. 트럼프가 종종 그와 현안을 논의했으며 그가 방송에서 한 말이 다음 날 트럼프의 기자회견에 반영되기도 했다고 알려졌다.
지난해 폭스뉴스를 떠난 그는 이번 대선에서 개인 채널, 연설 등을 통해 트럼프를 적극 지원하며 영향력이 더 막강해졌다는 후문이다.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인선 과정에서 트럼프 주니어와 함께 칼슨의 영향력이 증명됐다"며 "JD 밴스 상원의원이 부통령 후보로 낙점된 것과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을 차기 행정부에서 배제하는 트럼프의 방침도 칼슨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러닝메이트에 충성심이 높은 밴스를 추천하고,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찬성한 폼페이오를 내치도록 설득했다는 설명이다.
트럼프와 같은 배 탄 스타 앵커…"트럼프보다 더해"
칼슨은 방송인으로서의 운명을 트럼프와 함께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2016년 11월 14일 보수 성향인 폭스뉴스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프로그램 '터커 칼슨 투나잇'을 맡았다. 트럼프가 미 대통령이 된 지 며칠 후였다.
칼슨은 이 프로그램에서 반(反)이민, 외국 전쟁 개입 반대 등 트럼프 정책과 같은 '미 우선주의'를 주장했다. 2019년 "집단 이민이 미국을 가난하고 더럽게 만들었다"고 한 발언이 대표적이다.
칼슨 특유의 매서운 입으로 트럼프 지지자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얻으면서 '터커 칼슨 투나잇'의 2020년 10월 월평균 시청자 수는 케이블 뉴스 사상 최다 기록(536만 명)을 세웠다. 애청자인 트럼프도 칼슨에게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졌다. 악시오스가 지난 2020년 7월 트럼프의 발언을 분석한 결과 그의 발언 중 상당수가 방송에서 칼슨이 했던 발언이라고 분석했다.
칼슨은 지난 트럼프 정부도 독려한 코로나19 백신을 반대하고, 미국의 세계보건기구(WHO) 탈퇴를 주장하는 등 "트럼프보다 더한 트럼프주의"란 평도 받았다. 보수층에서 인기가 워낙 높아 잠재적 대권 주자로 거론되기도 했다.
칼슨은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한 후 내리막길을 걷는 듯했다. 그는 트럼프처럼 지난 2020년 대선이 부정선거란 주장을 반복적으로 제기하다가 폭스뉴스가 개표기 회사에 약 1조원을 물게 됐고, 결국 지난해 4월 해고됐기 때문이다. 그가 떠난 후 폭스뉴스의 전반적인 시청률이 폭락했다.
이란 정책 움직이고, DMZ 방문 동행도
이후 개인 채널을 연 칼슨은 트럼프와 한층 밀착했다. 트럼프는 지난해 8월 공화당의 대선 경선 토론엔 불참한 대신 칼슨과 인터뷰했다.
트럼프를 대선 후보로 지명한 지난 7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칼슨은 트럼프와 같은 VIP석에 앉았으며 찬조 연설을 했다. 대선을 며칠 앞두고 지난 10월 열린 조지아주 집회에서 칼슨은 트럼프를 옆에 둔 채 "아빠(트럼프)가 돌아올 것"이라고 말해 지지자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하며 차기 정부 실세로 화려하게 부활한 칼슨을 두고 일각에선 행정부 입각 가능성을 제기했다. 칼슨은 "그럴 생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미 정계에선 입각 여부를 떠나 그가 어떤 식으로든 트럼프의 정책과 인사에 깊게 관여할 것이라고 본다.
칼슨은 그간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반대해왔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서방 언론 최초로 지난 2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크렘린궁에서 인터뷰했다. 당시 푸틴이 칼슨을 인터뷰 상대로 택한 건 미 보수층에 러시아의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서란 해석이 나왔다.
또 지난 트럼프 정권에서 칼슨은 트럼프의 대이란 정책을 막후에서 움직인다는 시선을 받았다. 일례로 지난 2020년 1월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쿠드스군 사령관이 사망한 후 이란이 이라크 내 미군 기지 두 곳에 미사일 공격을 하자 칼슨은 방송에서 "이란과의 확전 자제"를 주장했다. 그로부터 불과 14시간 뒤 트럼프는 이란에 무력 보복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실제로 트럼프는 측근들에게 "칼슨의 방송을 봤다"고 말했다.
또 칼슨은 지난 2019년 7월 트럼프가 한반도의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했을 때 동행해 가까운 거리에서 북·미 정상의 회동을 지켜봤다. 반면 대표적인 매파 인사로 외교 정책에서 칼슨과 대립각을 세워 온 존 볼턴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은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이를 두고 트럼프가 북한의 반감을 고려해 볼턴을 배제하고, 칼슨을 데려갔다는 해석이 나왔다.
☞터커 칼슨(Tucker Carlson)
1969년 미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리처드 칼슨도 방송기자로 미국의 소리(VOA) 총괄 책임자를 지냈다. 칼슨은 이민을 반대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스위스 이민자의 후손이다. 칼슨의 부모는 그가 어린 시절 이혼해 그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칼슨은 로드아일랜드주 사립학교에서 만난 수지 앤드루스와 22살이던 1991년 결혼해 슬하에 자녀 넷을 뒀다. 그는 보수 성향 잡지 '폴리시 리뷰'와 시사 주간지 '위클리 스탠더드'에서 일했고, 2000년 CNN에서 방송을 시작해 MSNBC를 거쳐 2011년 폭스뉴스에 입사했다. '터커 칼슨 투나잇'을 7년간 진행하다 지난해 하차한 후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 '터커 칼슨 네트워크'(TCN)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