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재홍)은 미국 시카고박물관(The Art Institute of Chicago, 관장 제임스 론도 James Rondeau) 한국실의 확장 재개관을 기념하기 위해 올해 11월 1일부터 2026년 9월까지 약 2년 동안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을 대여 전시한다. 전시 기간 중 <서봉총 금관 및 금제 허리띠> 등 지정문화유산을 포함한 특집 전시는 내년 2월까지 3달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시카고박물관의 한국실 확장 이전 재개관은 국립중앙박물관의 한국실 지원 사업으로 진행되었으며, 기존 대비 세 배가량 확대된 새로운 상설전시 공간에서 한국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다. 무엇보다도 자체 소장품을 보유한 지 100여 년 만에 독립된 한국실 전용 공간을 마련하고, 첫 한국실 전담 전시기획자가 한국실 확장 개편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한국실 지원 사업의 의미있는 결과물로 평가된다. 이번 개관 기념 전시에서는 금관과 금제 허리띠를 비롯해 책가도 병풍, 분청사기, 백자 등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과 불상과 고려청자, 현대미술품 등 시카고박물관의 소장품이 함께 어우러져 다양한 한국의 문화유산 61건을 공개한다.
13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시카고, 한국 문화를 만나다
미국 일리노이주에 위치한 시카고는 어떤 도시보다도 한국 문화와 인연이 깊다. 1893년 5월부터 10월까지 6달 동안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시카고 박람회(World’s Columbian Exposition)는 미국의 각 주와 전 세계 46개 나라가 참여하고, 2천7백만 관람객이 모인 대규모 박람회였다. 특히 각 나라의 국가관을 전시했는데, 그 참가국 가운데 하나가 바로 조선이었다. 1882년 미국과의 공식 수교 이후 여러 나라와 수교 관계를 맺기 시작한 조선은 박람회를 국제 사회와 만나는 중요한 기회로 인식했다. 시카고박람회 참가는 조선의 이러한 긍정적 인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박람회라는 전시 공간을 문명의 경쟁이나 우열보다는 존중과 우호로 상호 발전하는 장소로 보았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의 국가 이미지를 국제 사회에 처음 공식적으로 알리고자 노력한 곳이 바로 이곳 시카고였다.
1893년 시카고박람회 참가를 위한 공식 대표단이 파견되었다. 시카고박람회 국가관에 등장한 조선관은 규모(84㎡)는 크지 않지만, 기와를 얹은 집 모양 전시관에 ‘대조선’이라는 국호와 태극기를 내걸었다. 가마, 의복, 수공예품, 곡물 말고도 조총과 갑옷, 호준포 등 조선의 일상과 역사를 보여주는 물품을 함께 전시했으며, 공식대표단으로 함께 온 악공들은 조선의 궁중음악을 연주하며 세계인에게 조선의 문화를 알렸다. 1893년 4월 29일 자 『시카고 트리뷴』 지에는 시카고박람회에 참가한 15명의 조선 대표단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으며, 낯설지만 새로운 나라 조선에 관심을 보였다. 당시 출품작 대부분은 판매되거나 기증되었는데, 현재 미국의 스미스소니언박물관과 시카고 필드박물관 등이 상당 부분 소장하고 있다.
그로부터 130여 년이 지난 지금, 시카고에는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은 한국실이 새롭게 탄생한다. 신라 서봉총 금관을 비롯한 다양한 한국의 문화유산이 다시 한자리에 모여 미국과 세계의 관람객들을 만난다. 130여 년 전과 같이 존중과 우호를 통해 서로의 문화를 알리고, 상호 발전을 도모하려는 정신만큼은 필연처럼 이어져 문화적 고리를 이룬다.
시카고박물관은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보스턴박물관과 함께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대표적 문화기관이다. 1920년대부터 한국미술을 수집해 왔으며 삼국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도자, 회화, 현대미술품 300여 점 등 다양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그러나 100여 년 수집의 역사에도, 독립된 전시실이 없어 중국실 안에 있는 몇 개 진열장에서 한국 문화유산을 전시해 왔다. 진열장의 한계로 고려청자 위주의 도자 전시 등만 이루어졌던 것도 아쉬운 점이었다.
새로 탄생한 독립된 한국실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한국미술 전시가 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에 대한 급증하는 관심을 다각적인 이야기하기로 풀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한국 문화에 지속해서 관심을 기울여 온 시카고박물관은 더 확장된 공간에서 더 많은 관람객을 맞이하며, 폭넓고 깊이 있게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기회를 얻게 될 전망이다.
다양한 주제로 더 깊이, 더 가까이 만나는 한국 문화
이번 개관 기념 전시는 ‘한국의 미술’을 주제로 한국의 오랜 역사와 종교, 정치, 물질문화를 각각 소개한다. 보존 처리를 마치고 100년 만에 공개하는 시카고박물관의 소장품인 18세기 불상으로 한국의 불교 문화를 소개하고, 으뜸 수준으로 평가받는 시카고박물관의 고려청자 소장품으로 한국의 다도 문화를 다룬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인 책가도 병풍을 비롯해 분청사기ㆍ백자ㆍ연적과 벼루 등으로 조선시대 물질 물화와 문화적 변화에 관해 이야기한다. 또한 전통재료인 한지에서 영감을 받은 현대 작품인 전광영 작가의 작품도 소개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눈에 띄는 전시품은 단연 신라의 뛰어난 금속공예 기술과 예술성을 잘 보여주는 보물 서봉총 금관과 금제 허리띠다. 서봉총 금관은 맞가지 모양과 엇가지 모양의 장식 등 기존에 출토된 신라 금관들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여주지만, 다른 금관에는 없는 열 십(十)자 모양의 금판과 봉황 모양 장식 등 화려함이 돋보인다.
서봉총 금관과 금제 허리띠는 신라 왕실의 위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고대 유물이다. 금관에는 일제 강점기 발굴 이후 잘못 조합된 부분이 있었는데, 2016년 국립중앙박물관 연구자들이 올바르게 복원했다. 김재홍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서봉총 금관과 허리띠는 고대 신라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한국의 문화유산이다. 이번 전시로 한국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과 높은 관심이 이곳 미국에서 더욱 확산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백자 연적도 매우 독특한 전시품으로 주목할 만하다. 용, 학, 복숭아, 만(卍) 무늬 등 화려하게 장식된 연적 안에 사찰 전각 조각과 인물이 감추어져 있어 보는 이의 상상과 감탄을 자아낸다. 과학적 조사를 기반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제작한 연적의 구조와 물길을 보여주는 고화질 영상 자료는 전시기간 한국실 안에서 상시 상영될 예정이다.
세계와 만나는 K-컬처, 시카고 지역사회의 관심을 넘어 세계로
시카고 지역사회에서 많은 관심을 받는 한국실 재개관은 국립중앙박물관의 한국실 지원 사업의 하나로 추진되었다. 한국실 지원 사업은 한국의 문화유산을 빌려주는 것말고도 한국실의 확장 이전이나, 시설 개편 같은 다양한 분야를 포함한다. 또한 시카고박물관의 확장 재개관은 한국실을 전담하는 지연수 큐레이터의 노력과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재개관 개막 행사는 11월 7일 시카고박물관 한국실 및 별도의 리셉션 공간에서 열렸으며, 시카고박물관 관계자, 주시카고 대한민국 총영사관의 김정한 총영사, 지역사회의 한인 및 문화계 인사 다수가 참여했다.
김재홍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과 시카고박물관의 자체 소장품이 함께 어우러져 소개됨으로써, 더 많은 이들이 한국의 역사와 예술을 접하고, 양국 간의 문화 교류 또한 한층 깊어질 것이라 기대한다”라고 축사를 전했다.
이번 전시는 미국 시카고박물관 한국실에서 2026년 9월까지 약 2년 동안 진행되며, 전 세계로부터 온 다양한 관람객들을 만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