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가 인적 분할을 단행해 위탁개발생산(CDMO)과 바이오시밀러·신약 개발을 분리하는 것은 사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CDMO 경쟁력을 강화해 글로벌 수요에 대응하고,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연구개발(R&D)에 집중해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바이오시밀러 개발을 넘어 신약 개발까지 뛰어든 만큼 중장기적으로 기업공개를 통해 신약 개발을 위한 재원을 확보할 수도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바이오에피스는 2012년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미국 바이오젠의 합작법인으로 출범했다. 초기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85%, 바이오젠이 15% 지분을 보유했다. 하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22년 바이오젠이 보유한 지분 전량을 약 23억 달러에 인수하며 현재는 100% 삼성바이오로직스 자회사로 편입된 상태다.
자회사 편입 당시에는 생산과 연구개발 회사의 시너지가 클 것으로 기대했지만 2년여 간 사업을 진행한 결과 두 회사의 사업부문이 겹치는 부분들에서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가 나타났다.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생산을 맡기는 글로벌 빅파마들 입장에서는 관련 기술이 연구개발을 하는 삼성바이오에피스로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바이오에피스가 바이오시밀러를 넘어 신약개발에까지 뛰어들기로 하자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고객사들을 설득하는 데 한계를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의약품 업계는 반도체처럼 R&D를 중심으로 하는 회사와 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회사가 나뉘어져 있다”며 “고객사들 입장에서 R&D회사를 100% 자회사로 보유한 삼성바이오로직스를 견제할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또 다른 포석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상장을 통한 재원 확보다. 지난해 삼성전자 미래사업기획단장으로 임명된 고한승 전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은 2015년 열렸던 기업설명회에서 “한국 시장의 한계점을 벗어나 가치평가를 받을 수 있는 나스닥에서 열심히 해온 일에 대해 증명을 받고싶다”며 “삼성바이오에피스가 미국의 나스닥 역사상 최대 기업공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발(發) 바이오 시장 악화 등 대외적 요인으로 나스닥 상장은 무기한 보류됐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입장에서는 상장 시 벤처투자나 인수합병(M&A) 등 적극적인 사업 확장이 가능해진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상장되고 일부 지분이 처분되면 스타트업이나 유망 기술기업에 일부 지분만 투자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나아가 신약개발 회사 등과 지분을 나눈 합작사 설립도 가능하다. 바이오시밀러사업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 속에 신약 개발사로 도약을 준비하는 삼성바이오에피스 입장에서는 시장 대응 유연성이 높아지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삼성바이오와 삼성에피스를 합병하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고 보지만 현실성은 낮아보인다. 다국적 제약사의 의약품을 위탁받아 생산하는 CDMO사업과 이들의 특허 만료 신약의 복제약(바이오시밀러)을 만드는 사업을 같은 회사가 영위할 시 고객사들로부터 신뢰를 얻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현재의 사업 중복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인적분할을 통해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배회사를 신설하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모회사인 삼성물산의 실질 지배력이 희석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삼성물산은 3월 열린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의약품 등의 연구개발 지원, 수탁사업 및 관련 서비스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했다. 당시 삼성물산 내 라이프사이언스 사업부에서 추진 중인 검체 분석 CRO(임상시험수탁기관) 등 관련 사업을 정관에 등록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삼성바이오 지배구조 개편에 나선 것은 삼성이 바이오사업을 CDMO와 시밀러 부문을 넘어 전방위 밸류체인을 구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