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한국의 자동차 파워

2025-06-30

국내 승용형 픽업 역사는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2년 쌍용자동차가 개발한 P-100이 시작이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승용형'이다. 분류는 화물차인데 SUV의 변형이어서 '승용형'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단어가 문제가 됐다. 당시 세제 당국이 '승용형'을 주목해 '승용차'로 분류하고 세금을 부과했다. 반면 법적으로 자동차 구분을 담당한 주무 부처는 화물로 형식승인을 내줬다. 따라서 승용 세금 부과는 부당하다 했지만 재정 당국의 강력한(?) 입김에 슬며시 발을 뺐다. 수많은 관련 법을 준수하며 제품을 개발해 내놓은 제조사만 곤혹스러웠다.

그런데 제조사를 더욱 황당하게 만든 건 그 이후다. 당시 승용형 픽업으로 미국산 수입차가 존재했는데 형평성 여론에 밀려 미국산 수입차도 특별소비세가 부과됐다. 그러자 지체 없이 미국 정부가 목소리를 냈다. 이전에 없었던 세금이 갑자기 생겨난 만큼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미국에서 판매되는 한국차에만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당시 연간 37만대를 미국에 수출하던 한국은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자존심 상한 행정 당국이 내놓은 해결책은 엉뚱하게도 국내 기업과 수입사를 차별하는 꼼수였다. '승용형'이라는 수식어는 넘어갔지만 뜬금없이 화물칸 면적을 문제 삼았다. 화물적재공간의 바닥 면적이 2㎡가 넘어야 한다는 규정을 새로 추가했다. 미국에서 수입된 승용형 픽업은 2㎡가 넘었던 반면 국산은 기준을 넘지 못했다. 교묘하게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며 국내 제조사를 대놓고 차별한 셈이다. 어쩔 수 없이 제조사가 훗날 면적을 확대했지만 당시 사건은 한국 정부가 한국 기업과 소비자를 대놓고 무시한 처사로 역사에 남아 있다. 그리고 미국의 자동차 파워를 여과 없이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이후 한국은 자동차 부문 성장을 위해 시장 규모가 가장 큰 미국 진출에 적극 나섰다. FTA 체결 전인 2011년 대미 완성차 수출대수는 58만대였지만 FTA 체결 이후 점진적으로 늘어 2016년에는 96만대를 기록했다. 미국 수출이 증가할수록 현지 생산도 확대됐다. 하지만 이를 못마땅하게 지켜본 인물이 2017년에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이다. 한국이 미국에 자동차를 너무 많이 수출한다며 제동을 걸었다. 결국 FTA 재개정에 합의했는데 이때도 자동차 부문은 지켜냈다. 대신 한국은 철강과 농축산물 분야를 희생시켰다. 국내 자동차산업이 너무 커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재개정 이후 한국의 미국 완성차 수출은 무려 130만대까지 증가했다.

최근 평탄하던 미국 자동차 수출이 다시 위협받는 중이다. 8년이 흘러 관세에 집착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자동차 부문의 관세를 부과했고 국내 기업들은 현지 생산 확대로 돌파구를 마련하려 한다. 그럴수록 한국 정부는 일자리 축소에 위기를 느끼는데 아무리 머리를 싸매도 관세 칼날을 피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이번에는 한국에서 미국 공장으로 들어가는 부품에도 관세를 부과했고 품목 수도 늘린다. 동시에 한국 외에 일본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며 예외 없음을 강조한다. 결국 미국에서 조달된 부품으로, 미국인을 위해, 미국 사람들이 자동차를 만들도록 압박하는 형국이다.

전례에 비춰 이번에도 자동차 부문의 타격을 줄이려면 미국에서 무언가를 사와야 한다. 그 결과 희생양이 되는 산업은 나올 수밖에 없다. 힘의 논리로 밀어붙이니 당해낼 재간이 없다. 공정 등을 외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한국과 미국이 자동차 부문의 일자리 싸움을 치열하게 펼쳐야 한다. 과거부터 경험한 미국의 강력한 자동차 힘을 막아낼 수 있을까 걱정이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