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 패션업계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또는 아티스틱 디렉터로 불리는 디자이너 교체로 연일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대표적인 브랜드가 이탈리아 럭셔리 패션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다.
보테가 베네타는 지난 12일 또 다른 럭셔리 패션 브랜드 카르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루이스 트로터(Louise Trotter)를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하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현 버버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다니엘 리부터 최근 샤넬의 아티스틱 디렉터가 된 마티유 블라지까지 젊은 신예 디자이너를 과감하게 발굴해 브랜드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은 물론이고, 이들을 스타 디자이너의 반열에 오르게 한 보테가 베네타의 통찰에 관심이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차분히 시선 잡아끄는 힘
요란하지 않지만 언제나 시선을 잡아끄는 힘. 이것이 보테가 베네타가 가진 특별함이다. 이 힘은 장인 정신에 기반을 둔, 기능성과 심미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이들의 패션 철학에 있다.
브랜드 역사를 살펴보면 이들의 철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보테가 베네타는 1966년 이탈리아 북동부에 위치한 베네토 지역에서 가죽업에 종사하던 미켈레 타데이(Michele Taddei)와 렌조 젠지아로(Renzo Zengiaro)에 의해 설립됐다. 이름인 보테가 베네타는 이탈리아어로 ‘베네토의 공방’을 뜻한다. 두 명의 창립자는 지역 장인과 함께 이탈리아의 특산품이라 할 수 있는 질 좋은 가죽을 한 줄 한 줄 꼬아 만든 ‘인트레치아토’를 개발했고, 지금까지 브랜드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브랜드 창립 초기부터 가방 제작에 집중해온 이들은 여행과 움직임에 집중했다. 부드러운 가죽을 이용한 유연한 형태로 여행자의 손을 가볍게 만들고, 또 이동 중에도 몸에 자연스럽게 밀착돼 자유롭고 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제품 디자인에 공을 들였다.
편안하지만 역동적인 ‘이동’ 철학
보테가 베네타엔 ‘이동(Going Places)’이라는 개념이 있다. 여행하거나 출장 갈 때, 또는 도시를 돌아다닐 때 보테가 베네타의 옷과 액세서리를 착용하는 것을 말한다. 회사에 출근하거나 저녁 모임을 위한 외출, 혹은 주말에 산책할 때와 같은 일상에서 착용자의 스타일을 빛내 줄 편안하면서도 역동적인 실루엣에 관해 이야기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일상의 편안함과 기능성에 집중하지만, 디자인 커팅과 질감에서는 절대 평범하지 않다는 점이다.
올 연말과 내년 이른 봄 시즌의 컬렉션을 보면 이 개념이 잘 드러난다. 이번 시즌에 공개된 캠페인 이미지에 등장한 체크무늬 셔츠에 가죽 스커트 차림에 숄더백을 무심히 멘 것처럼 보이는 여성, 오렌지색과 회색의 굵은 체크 셔츠를 입고 두 개의 디아고 백과 도큐먼트 케이스를 든 남성의 모습은 편안하면서도 강렬한 패턴과 실루엣에서 역동성이 느껴진다. 또한 이들이 들고 있는 가방의 인트레치아토 기법은 하나의 스타일 포인트가 되기도, 인고의 시간을 들여야만 탄생할 수 있는 장신 정신의 표상으로 이를 존중하는 착용자의 취향을 보여주는 듯하다.
또한 이들은 저녁 모임 또는 외출할 때의 특별함도 놓치지 않았다. 검정 슬립 드레스에 금빛 안디아모 클러치를 든 여성과 굵은 올이 돋보이는 체크 코트와 수트를 입은 남성의 스타일은 심플한 실루엣에 독특한 소재와 디테일이 융합돼 만들어졌다. 지금 유행하는 트렌드를 쫓기보다 착용자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집중한 스타일로, “이동이란 개념은 옷을 착용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누구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상상을 하게 하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탐구하는 것과 관련된다”는 보네타 베네타 측의 설명과 부합한다.
럭셔리 패션의 새로운 서사
최근 이들은 ‘24 윈터 솔스티스(Winter Solstice 24)’ 캠페인을 공개했다. 이번 캠페인은 단순한 계절적 프레젠테이션을 넘어 럭셔리 패션의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캠페인은 시간·빛·재생과 같은 ‘동지(Solstice)’의 상징적 의미를 중심으로 한 사색적 접근을 선보였는데, 매년 홀리데이 시즌에 흔히 볼 수 있는 캠페인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이다.
이번 캠페인을 통해 보테가 베네타는 단순한 컬렉션을 넘어 ‘진정한 예술적 창의성의 가치를 상기시킨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오랜 시간 지속한 장인 정신과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 사이에서 우아함을 재정의하며 진정한 럭셔리란 무엇인지를 다시금 이야기하고 있다.
연말 시즌에 선보인 가방 등 제품에서도 이는 여실히 드러난다. 이탈리아어로 ‘가자(Let’s go)’를 뜻하는 안디아모 백은 우아한 형태를 자랑한다. 여기엔 ‘이동’ 철학이 담겨 있는데, 2023년 여름 컬렉션에서 처음 선보인 이후 다양한 색상과 모양, 소재를 바꿔가며 브랜드의 시그니처 백으로 자리매김했다. 안디아모는 시그니처 인트레치아토 위빙과 하우스 코드가 담긴 메탈 ‘놋’ 디테일, 슬라이딩 크로스 스트랩을 적용해 심미성과 기능성을 동시에 갖췄다. 안디아모에서 발전한 안디아모 메신저 백은 이들의 가방 철학인 ‘움직임’ ‘이동’ 개념에 맞춰 안디아모 백을 재해석한 크로스 바디 메신저 백으로, 넉넉한 수납공간과 탈부착 가능한 스트랩을 더해 실용성까지 겸비했다.
브랜드의 과거 아카이브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파라슈트 백은 낙하산 모양의 유연한 실루엣을 강조하며 우아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풍긴다. 인트레치아토 기법으로 만들어진 가방은 ‘이동’ 철학에 맞게 여행이나 일상 등 어디에서나 무리 없이 착용할 수 있는 실용성을 갖췄다. 다양한 사이즈 및 컬러도 강점으로, 스몰 사이즈의 경우 탈부착 가능한 어깨끈이 내장돼 크로스 바디, 토트 또는 숄더 스타일로 연출할 수 있다.
매듭 모티브로 소원 기원
브랜드의 상징 중 하나인 ‘놋(Knot, 매듭)’ 모티브는 이번 시즌 액세서리로도 선보였다. 놋 장식이 들어간 프렌드십 브레이슬릿은 실크 스트링을 세 번 묶어 착용하는데, 각 매듭에 소원을 담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남녀 모두 착용 가능한 유니섹스 디자인으로, 15가지 색상으로 출시돼 레이어드 스타일링을 통해 개성 있는 연출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