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 귀를 막아도 들리는 비명(悲鳴)소리] 생지옥의 교육장(2)

2024-10-12

모자와 훈련복 상의의 왼쪽 가슴에는 나의 훈련생 교번이 적혀 있었다. 앞으로 군번처럼 쓰일 그 번호는 나를 3중대 3소대로 배치되게 하였다. 정녕 못 올 곳으로 끌려왔다고 생각한 것은 그 후 입소식이 있을 때였다. 약 천 명이 될 것 같은 교육생들이 모이자 장교가 단상에서 훈시를 했다. 그의 카랑카랑한 말소리는 확성기를 통해 연병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먼저 우리 특전부대에서 순화교육을 받게 된 제군들을 환영한다. 여기는 군대다. 군대이기 때문에 명령과 절대복종만이 있을 뿐이며 저항과 반항은 존재할 수 없다. 반항을 용서하지 않겠다. 분명히 말하지만 제군들은 사회로부터 격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군대가 나서 순화교육을 시키고 새 사람을 만들어 다시 사회로 내보내기 위해 여기에 오게 된 것이다. 만약 교육 성적이 불량하면 또 다시 교도대로 넘겨져 새 인간이 될 때까지 교육을 받게 될 것이다. 스스로 자신에게 물어보라! 사회는 여러분과 같은 암적인 존재들을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국가에서 제군들에게 주게 된 이 기회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새롭고 쓸모 있는 인간으로 개과천선해 사회로 나가게 되기를 충심으로 바란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수련생인 제군들이 여기에 있는 동안 지켜야 할 몇 가지 사항을 밝혀 두겠다. 첫째, 일체의 외부인을 만날 수 없다. 면회는 불허한다. 둘째, 신문, 잡지, 라디오 등 방송 일체를 시청 내지 청취하지 못한다. 셋째, 화폐의 통용도 금지한다. 부대에 맡긴 소지품 일체와 화폐는 출소할 때까지 하나도 손실 없이 부대가 보관할 것이다. 이 모든 규칙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다. 지난날 지은 죄들은 순화교육을 통해서 모두 깨끗이 씻어 버리도록 하라. 누구에게나 한 번의 과오는 있는 법이다. 나는 여러분이 지은 죄를 미워할 뿐이지 결코 여러분을 미워하지 않는다. 아무쪼록 새 시대를 맞은 여러분이 되기를 충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이것이 정부가 지향하는 삼청교육의 목적이다. 이상!”

훈시가 끝나자 중대장이 임명되었다. 우리 3소대의 선임 하사와 조교를 따라 배정된 막사(내무반)로 갔다. 내무반을 향해 걸어가던 우리 소대는 처음으로 호된 단체 기합을 받는 소대가 되었다. 소대의 대열 앞에 걸어가던 조교가 휙 돌아서며 “입 다물어!”하는 소리를 질렀다. 이때 뒤따르던 선임 하사가 바로 명령을 내렸다. “동작 그만! 제자리에 선다.” “이 새끼들아! 참새떼인가? 왜 조잘거리는 거야! 오리 새끼들이야! 왜 가갈 대는 거야! 저기 철조망까지 귀를 잡고 오리걸음으로 갔다 온다! 실시.” 걸어가면서 잡담을 한다는 게 이유였다.

우리는 모두가 귀를 잡고 오리걸음으로 엉덩이가 땅에 닿을 만큼 주저앉은 걸음으로 걸어갔다. 선임 하사와 조교를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일어서 가는 사람, 앉아서 가는 사람, 아예 주저앉고 그대로 있는 사람, 대열은 오합지졸이었다. 곤봉을 맞고 여기저기서 쓰러지는 사람도 수두룩했다. 선임 하사가 열을 올리면 조교는 그 몇 배의 핏대를 세웠다.

연병장을 둘러친 철조망까지 갔다 온 사람은 선임 하사와 함께 벌써 내무반으로 들어가 침상에 올라 있었다. 잠시 후 뒤처졌던 소대원들이 돌아왔다. 그러나 조교는 내무반 앞에서 그대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을 뿐 들어오지 않았다.

“와, 개새끼! 오란 말이야! 저 새끼 골 때리네! 이 자식아, 뛰어오란 말이야! 어서 뛰어! 빨리 못 뛰어! 뛰어오란 말이야.” 누군가가 뒤처진 사람들 중에서 또 더 처진 사람이 있는 모양이었다. 선임 하사가 뛰어갔다 다시 들어오더니 침상에 서 있는 소대원을 휘둘러보고 내 앞으로 와서 멈춰 서는 것이었다. 나는 머리끝이 쭈빗 서는 것 같았다. 곤봉으로 나의 배를 쿡 찌르고 나서 다시 내 옆에 선 수련생의 배를 쿡 찔렀다. “너들 둘이서 밖에 아직 못 오고 있는 자식 끌고 와!”

연병장에 주저앉아 있는 수련생 쪽으로 뛰어갔다. 그는 아예 일어서지 않을 양으로 눈물만 떨구고 있을 뿐 일어설 생각은 않는 것 같았다. “야! 일어서 가자. 너 때문에 다 기다리고 있어! 어서 일어나. 어서.” 그의 팔을 잡고 일으켜 세웠으나 그는 다시 주저앉아 버렸다.

조교가 와서 그를 발로 차며 곤봉으로 마구 때렸다. 나는 조교의 팔을 잡으며 말리려 했다. 그 순간 조교는 휘두르던 곤봉을 나에게 돌렸다. 곤봉으로 대여섯 번을 내리친 다음은 발길질이었다. 같이 간 수련생이 주저앉은 그를 쏘아붙였다. “야, 임마! 배00! 너 여기서 또 고문관 행세하면 할수록 우리 소대만 죽어나고 단체 기합받는다 말이다. 그래도 안 갈라 카는 기가? 너는 여기 오기 전 경찰서에서부터 애를 먹이더니! 임마야! 여기는 경찰서하고는 다른 곳인 줄 니도 알 거 아이가!”

그는 배00과 밀양에서 같이 왔다면서 “이느마가 원채 베운 게 없는 무학자인데다가 시골 방앗간에서 일하는 놈이라 아무것도 모르는 불쌍한 아입니더! 그러이 조교님, 좀 살려 주이소!” 그러면서 그가 나에게 살짝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순해 자빠진 애가 어째서 여기까지 끌려왔는지 모르겠단 말야.” 그의 말처럼 그는 순박하기 이를 데 없을 만큼 유순한 시골 청년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아무리 두들겨 맞는다 해도 주저앉아 있을 뿐 내무반으로 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첫날부터 선임 하사와 조교에게 우리 소대가 인상을 구기게 된 것 같아서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자네 이름이 뭐꼬?” 그는 대답 대신 “예.”하고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야, 나도 너하고 똑같은 훈련생으로 왔다! 말은 놓아 해도 괜찮으니 내 말 듣고 같이 내무반으로 가자! 소대원들이 너 오도록 다 기다리고 있다.” 내가 그를 타이르듯 달래며 말했다. 그러나 그는 역시 그 말의 뜻조차 모르는 듯이 빙긋이 웃고만 있는 것이었다. 선임 하사가 보다 못해 그를 끌고 갈 생각을 접는 것 같았다.

배00을 조교에게 맡기고 우리는 돌아가자고 했다. 내무반으로 걸어가면서 내가 선임 하사를 돌아보았다. “선임 하사님! 저 배00 때문세 소대원들이 또 단체 기합을 받게 되면 쟤는 아마 소대원들의 등쌀에 못 견뎌내고 더 가슴 아파하면서 훈련받는 게 싫어질 것 아닙니까? 한 번 용서해주시고 그냥 넘어가도록 합시다!” 그곳에서 철없는 말을 해버렸다.

선임 하사는 그 말의 뜻을 알면서도 섬찟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야! 너 자식, 참 웃기고 있네! 임마! 여기가 사회인 줄 알아? 한 번 다시 말해 봐!” 나는 다시 그와 같은 뜻으로 말했다. 선임 하사는 걸음을 멈추고 “임마! 너도 저 자식과 같이 꿈꾸고 있는 거야?” 후려칠 자세였다. 나는 입을 다물고 거의 부동자세로 서 버렸다. “야! 너들 둘 먼저 들어가 봐.”

나는 차를 타고 올 때까지만 해도 짐작하지 못했던 교육장 내의 분위기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인간적인 면은 어느 한 곳에도 찾을 수 없는 모두가 싸늘한 냉혈 인간들이 기간 사병들임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는 내무반에 들어서서 조교 앞에 섰다. “선임 하사님이 가라고 해서 먼저 왔습니다.” “그 자식은 어쩐다냐?”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주저앉아 있으니까 선임 하사님이 지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 참! 미치겠네.”

조교가 다시 연병장으로 뛰어가자 내무반은 두런거리기 시작했다.

“야! 그 새끼 때문에 우리는 인자 다 죽었다. 첫날부터 그 자식 바람에 우리가 찍혔으니 앞으로 우리만 고생하게 되는기라…” 누군가가 투덜거리고 나면 모두가 맞장구쳤다. “맞지 그리.”

최종두 시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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