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지르면 내일 배송 온다, 안 타보고 사는 요즘 중고차

2025-03-11

하루 만에 배송되는 요즘 중고차…플랫폼 이용 ABC

경제+

오늘 앱에서 주문하면 내일 아침 배송받는 이커머스 혁신, 중고차 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실물 한 번 보지 않고 앱에서 중고차를 골라 주문하면 다음 날 집에서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 중고차 거래 플랫폼 케이카는 지난해 소매 판매분의 절반 이상(56%)을 100% 온라인으로 팔았다. 타던 차도 얼굴 한 번 안 본 딜러에게 경매 붙여 최고가에 파는 일이 대세로 자리잡았다. 연간 235만 대 규모 거대한 중고차 거래 시장이 이커머스 플랫폼으로 서서히 무게 중심을 옮기는 모양새. 중고차 거래 이커머스 플랫폼 시대 모든 것을 모았다.

안 타보고 클릭 한번에 주문…맘에 안 들면 3~7일 내 환불

◆중고차, 편하게 사는 법=2014년 설립된 엔카닷컴은 원래 중고차 딜러 매물을 광고하는 플랫폼이었다. 하지만 2019년 ‘엔카믿고’를 출시하면서부터 광고가 아닌 중개 플랫폼으로 정체성을 바꿨다. 엔카믿고는 엔카닷컴이 일반 딜러 매물을 검증한 뒤 소비자에게 비대면으로 판매하는 서비스다. 엔카 직원이 소비자 대신 딜러 매물을 구석구석 살펴보고, 포착한 하자를 있는 그대로 적어 ‘차량 리포트’로 공유한다. 소비자는 딜러가 아닌 엔카 직원과 소통하기 때문에 부담이 적다. 차량은 소비자가 원하는 곳으로 배송되며, 소비자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7일 내 환불도 가능하다. 그러나 환불 땐 탁송비(편도 약 5만~10만원)와 재상품화 비용(약 10만원) 등을 부과하기 때문에 미리 약관을 잘 살펴야 한다.

중고차에 이커머스 모델을 처음 도입한 건 2015년 ‘내 차 사기 홈서비스’를 내놓은 케이카다. 케이카는 요즘 전체 소매 판매의 절반 이상을 홈서비스로 판다. 주문 24시간 내 차량을 가져다 주는 ‘1일 이내 배송’도 제공한다. 케이카가 직접 매입한 차량만을 판매하기에 가능한 서비스다. 케이카에서 매물을 검색한 뒤 ‘홈서비스 바로구매’ 버튼을 눌러 보증 상품, 결제 방법(현금·할부·카드 조합)을 선택하고 나면 최종 결제까지 한번에 이뤄진다. 케이카도 책임환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3일 이내엔 탁송비 제외 전액 환불을 보장한다.

직원이 딜러 매물 직접 검증…전기차는 배터리 집중 진단

◆까다롭게 따져보고 사기=편한 것만 능사는 아니다. 사람도, 차도 각자 특성이 있다. 상품을 까다롭게 고르고 싶은 소비자를 노린 플랫폼도 인기를 끌고 있다. 금융회사 KB캐피탈이 운영하는 KB차차차는 각종 데이터를 정교하게 다듬어 거래를 돕는다. 매물마다 소유·사고이력·용도변경·주행거리 등 요소를 숫자 중심으로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한 ‘요약이력’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매물 별 시세 감가 예측 그래프 등이 포함된 KB시세 정보도 제공한다. 해당 차량 가격이 동일 모델 차량 대비 높은지 낮은지 알 수 있는데, KAIST와 인공지능 기업 엑스브레인이 개발한 시세 예측 모델로 작동한다.

최근엔 전기차 전용 플랫폼도 나왔다. 내연기관 차와 구조적으로 다른 전기차 특성 때문에 기존 플랫폼 진단 방식만으로는 제대로 된 정보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을 파고들었다. PRND가 지난해 9월 출시한 전기 인증 중고차 플랫폼 리볼트는 전기차 배터리를 다각도로 진단한 뒤 이를 통과한 무사고 차량만 인증해서 판매한다. 배터리 진단기기로 고전압배터리를 요소 별로 측정해 그 결과값을 ‘배터리 성능 98%’ 등 형식으로 알기 쉽게 보여준다. 차량별 배터리 제조사와 생산공장, 완충 주행거리와 충전 규격 등 제원도 함께 제공한다.

◆내 차 경매로 팔기=과거엔 타던 차량을 중고로 판매할 때 매매단지를 찾아갔다. 시간·비용 등 물리적 한계 탓에 여러 견적을 비교하기가 쉽지 않았고, “다른 데 가면 이 가격 못 받는다”라는 매입 딜러 말만 믿고 차를 판매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요즘엔 플랫폼을 통해 전국 매입 딜러들에게 ‘내 차’를 보여주고 경매에 붙여 가장 비싼 가격에 파는 게 대세가 됐다. 2014년 헤이딜러가 ‘내 차 팔기 경매’라는 이름으로 처음 도입한 이래 거의 모든 중고차 거래 플랫폼이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내 차 팔 때도 앱 통해 경매…사진 올리면 딜러들이 입질

이용 방식은 대부분 플랫폼이 유사하다. 앱 소비자가 차량 번호판 및 기본 제원 정보, 수리 이력, 사진 등을 입력하면 최대 48시간 동안 경매가 진행된다. 소비자는 마음에 드는 딜러를 선택하고, 이 딜러가 소비자를 찾아와 차량을 감정한 뒤 최종 가격을 제시한다. 각 플랫폼에선 개별 딜러의 과거 입찰·매입가, 소비자 후기 등을 하나하나 확인할 수 있다. 딜러를 선택해 만나면 판매글과 다른 사항에 대해 딜러가 경매가격보다 더 가격을 내려달라 요청할 수 있다. 이 요청이 정당했는지 여부는 ‘감가심사센터(헤이딜러)’ ‘거래확인센터(엔카닷컴)’ 등이 최종 모니터링한다.

경매 서비스는 최근 더 발전하고 있다. 헤이딜러의 ‘헤이딜러 제로’는 소비자가 차량 번호만 입력해 두면 나머지를 플랫폼이 알아서 해준다. 전문 진단평가사가 방문해 차량을 진단하고 플랫폼이 딜러 경매를 개시한다. 경매가 시작된 뒤엔 차주가 최고 입찰가에 차량을 판매할지만 결정하면 된다. 에스크로 계좌에 예치된 판매 대금이 감가 없이 그대로 입금된다. 엔카닷컴도 엔카비교견적PLUS라는 동일 서비스를 출시했고, KB차차차도 이달 유사 서비스를 내놓을 예정이다.

경매 과정도 번거롭다면, 케이카 ‘내차팔기 홈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 내차팔기 홈서비스는 케이카 소속 차량평가사가 직접 방문해 무료로 차량을 평가한 뒤 견적을 내고, 현장에서 즉시 매입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케이카는 지난해 소매차량의 28%를 홈서비스로 직접 매입했다.

◆진화는 계속=최근엔 개인 간(C2C) 중고차 직거래시장도 열렸다. 누적 가입자 4000만 명 이상인 당근이 2021년 이 시장에 뛰어든 뒤 생긴 변화다. 민주당 윤종군 의원실에 따르면 당근을 통한 중고차 거래 건수는 2022년 84건에서 2023년 4만 6869건, 2024년 8만 405건 등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당근 중고차는 매수자·매도자에 아무런 수수료도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보험 사고이력과 종합검사기록을 제공하고, 필요 시 전문 진단평가사의 출장진단 서비스까지도 무료로 제공한다. KB차차차(직거래차차차), 엔카닷컴(직거래간편등록) 등 기존 플랫폼도 직거래 시스템을 도입했다.

올해는 대기업이 시장의 ‘메기’ 역할을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대기아차는 2023년 10월 인증 중고차 시장에 진출했지만, 중소벤처기업부 사업조정 권고에 따라 2025년 4월까지 현대차 4.1%, 기아차 2.9% 수준의 시장 점유율을 유지해야 했다. 오는 5월부터는 점유율 제한이 사라져 보다 공격적인 영업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국내 렌터카 1위 업체 롯데렌털도 지난해 11월 중고차 장기렌터카 채널 ‘마이카 세이브’ 내에 중고차 매매 사업을 추가했고, 이르면 이달부터 본격적인 마케팅을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중고차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크게 본다.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중고차 매매량은 234만6267대로, 신차(163만8506대)의 1.43배 수준이었다. 독일(2.1배), 미국(2.3배), 영국(3.8배) 등 주요 자동차 제조국에 비해 적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중고차 시장은 시스템을 얼마나 투명하게 바꾸냐에 따라 지금보다 최소 50%는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며 “대기업의 참여가 시장을 키우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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