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피치 "신용등급 측면서, 한국기업 불확실성 커졌다"

2025-04-27

트럼프발(發) 관세 폭탄으로 수출 의존도가 큰 한국 대기업들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쌓아온 공급망이 통째로 흔들리는 상황인데, 국내 기업들의 신용등급에는 영향이 없을까.

국제신용평가사 피치(Fitch Ratings)의 셸리 장 APAC(아시아태평양) 기업신용등급 이사는 지난 21일 중앙일보와 화상 인터뷰에서 “미국의 대중 제재와 관세 정책 영향으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들의 현금 흐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며 “당장 (기업신용등급이) 변동될 가능성은 낮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장 이사는 피치에서 삼성전자(AA-/안정적), SK하이닉스(BBB/안정적), LG전자(BBB/안정적) 등 한국 주요 기업들에 대해 1년 단위로 갱신되는 신용등급 평가를 총괄한다.

신용등급은 기업의 디폴트(default·채무불이행) 확률을 수치화한 것이다. 피치의 등급 체계에선 AAA가 가장 우수하다. 뒤이어 AA·A·BBB·BB·B·CCC·CC·C, 그리고 RD(Restricted Default·제한적 디폴트)와 D(디폴트) 순서로 이어진다. 같은 등급 안에서도 플러스(+)와 마이너스(-)로 나뉘기도 한다. BBB 등급까지가 ‘투자등급(investment grade)’으로 안정적인 투자 대상을 의미하고, BB 등급 이하부턴 ‘투기등급(speculative grade)’으로 분류돼 투자에 주의를 요한다.

기업 신용등급 평가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기준은 뭔가.

‘현금 흐름 창출에 얼마만큼 예측가능성(visibility)이 있느냐’를 가장 중요하게 본다. 신용등급이 오르기 위해선 재무적 지표 개선 등 수치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정성적으로 ‘사업 리스크가 얼마나 줄었는지’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영업현금흐름이 얼마나 예측 가능해졌고, 시장 지위는 얼마나 공고해졌는지 같은 정성적 요소가 함께 개선돼야 등급 상향이 가능하다.

최근의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한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 생산기지를 많이 구축해 왔는데, 그게 무색해질 정도로 미국이 중국에서 첨단 기술 제품을 생산하지 못하도록 막아놨다. 한국 기업들이 투자한 금액에 비해 생산 설비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관세 문제까지 더해졌다. 수출 비중이 큰 한국 기업들에 굉장히 좋지 않은 상황이다. 신용등급 평가에 있어 ‘수익성과 현금 흐름을 예측할 수 있냐’는 측면에서 불확실성이 커졌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의 영향은 어느 정도로 보나.

한국 반도체 산업계에 직접적인 영향보단 간접적인 영향이 크다. 반도체는 부품 단위의 사업이다 보니 엔드마켓(최종 소비자 시장) 수요 감소→GPU(그래픽처리장치) 수요 감소→메모리 수요 감소로 이어지는 간접적 타격을 받는다. 또한 반도체는 글로벌 공급망이 촘촘하게 연결돼 있는데, 미국이 자국 내 생산을 요구하면서 가장 효율적으로 구축해 놓은 기존 생산기지를 재배치해야 한다. 투자비가 늘어나고 수익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한국 반도체기업 신용등급 평가에 어떻게 반영하나.

우선 삼성전자는 기업 규모가 크고 시장 지위도 지배적이다. 단기적인 실적이 조금 나쁘다고 해서 신용등급에 크게 영향을 주진 않는다. 삼성전자의 신용등급 여유 한도(rating headroom)는 아직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보다 중요한 건 중장기적으로 삼성전자가 잘 구축해왔던 시장 지위를 앞으로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다.

삼성전자의 시장 지위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가장 큰 경고등은 기술 리더십을 뺏기고 있다는 점이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분야에서 삼성전자의 캐치업이 늦어지고 있다. 파운드리 분야도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겠다는 목표 달성이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중국 시장에서도 중국 정부가 자국 칩을 계속 밀고 있어 D램·낸드 같은 기존 메모리 사업에서 실적 악화가 발생할 수 있다. 다만, 여전히 재무적 뒷받침이 되는 기업이라 투자 확대를 통해 HBM 분야에서 시장 지위를 다시 가져올 거라 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어떤가.

SK하이닉스는 HBM이라는 고부가가치 제품에 대한 리더십을 선점했기 때문에 굉장히 고무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HBM은 계약 기반 매출이 이뤄지는 수익 모델인 만큼 변동성에 따른 리스크가 적다는 장점이 있다. 가격이 어느 정도 고정돼 있기 때문에 수익 구조도 안정적이다. 특히 사상 최고 실적을 내고 있어 현금 흐름이 좋아지고 재무적인 부분도 탄탄해졌기 때문에 신용도에 긍정적인 흐름이다. 다만 관세 정책 등 대외 환경이 부정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 변수다.

중국 반도체 기술이 한국을 얼마나 따라잡았다고 보는지.

일정 부분까진 따라올 수 있지만 (중국이) 지배적인 시장 지위를 가지긴 쉽지 않다. 낸드플래시 분야에선 중국 YMTC(양쯔메모리) 같은 기업이 삼성전자에 근접한 수준까지 왔다고 본다. 하지만 기술력과 별개로 수율이 낮아서 생산원가가 높다 보니, 중국 내에서도 삼성전자, 마이크론 등 기존 반도체 업체에 일정 부분 의존할 수밖에 없다. 또한 D램 분야의 경우 기술 장벽이 높아서 아직 중국이 따라오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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