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번도 실패한 적 없는, 나이키 지저스 등판
블랙 시멘트. 처음 들으면 “신발 이름이 왜 이래?” 싶을, 이상한 애칭을 가진 이 신발은 1988년에 발매된 마이클 조던의 세 번째 시그니처 슈즈, 에어 조던 3의 오리지널(OG) 컬러웨이 중 하나다. 블랙 시멘트라는 이름 자체는 검은색 가죽 어퍼에 시멘트 그레이 컬러의 디테일이 들어갔기 때문이고 에어 조던 3 OG 컬러들 중에서는 유일한 검은색 모델이다.
에어 조던 3는 80년대 농구화지만 당시 나이키 기술의 핵심을 담았고, 농구화 디자인의 새로운 장을 연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신발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이키는 없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진작에 역사속으로 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소개할 신발은 나이키를 구원한 신발, 에어 조던 3 “블랙 시멘트” 다.
나이키의 위기와 구원자
구원자라고 하니 데드풀 3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 “마블 지저스”가 떠오르는데. 에어 조던 3야말로 나이키 지저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84년, NBA 드래프트 3위로 프로에 데뷔한 마이클 조던은 곧장 나이키와 계약했으나 당시 나이키는 아주 작은 회사였고 조던 또한 나이키가 아닌 아디다스와 계약하고 싶어했다. 부모님의 설득에 의해 나이키와 계약 후 에어 조던 1, 에어 조던 2가 발매됐고 판매량도 나쁘지 않았지만. 조던의 마음은 여전히 다른 곳에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에어 조던 1의 디자이너였던 피터 무어와 마케터였던 랍 스트래서가 함께 아디다스로 이직하면서 마이클 조던을 회유하게 되는데. 안 그래도 도전자의 위치였던 나이키가 데뷔하자마자 NBA 올스타로 떠오른 조던을 아디다스에 뺏기는 것은 나이키 창립 이래 최대 위기나 다름없었다.
마이클 조던의 마을을 돌리기 위해서는 그가 만족할 만한 새로운 신발이 필요했는데. 바로 그때 등장한 사람이 당시 에어 맥스 1을 세상에 내놓은 천재 디자이너, 팅커 햇필드 그리고 에어 조던 3였다.
팅커 햇필드
팅커 햇필드는 건축가였다. 나이키와의 첫 만남도 건축일 때문이었는데, 당시 에어 포스 1의 프로토타입을 보고는 신발과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에어 조던 1을 디자인한 사람은 피터 무어였지만 이미 기존의 농구화 디자인에서 벗어나 “에어 조던” 자체가 농구화의 기준이 된 것은 팅커 햇필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키가 팅커 햇필드에게 준 특명은 “마이클 조던의 마음을 돌려라.”였다. 에어 조던 1은 잘 팔렸지만 1985년 레터맨 쇼에 나갔던 조던은 자신의 신발이 못생겼다(ugly)고 발언하기도 했고 에어 조던 2 또한 조던이 원하는 신발은 아니었던 것. 팅커 햇필드는 마이클 조던만을 위한 신발을 만들기 시작했다.
블랙 시멘트
컵솔 구조가 대부분이었던 70~80년대 농구화 시장에서 팅커 햇필드가 만들어 낸 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신발 내부에 숨겨져 있던 에어 유닛을 밖으로 훤히 드러낸 에어 맥스 1의 기술을 에어 조던 3에 그대로 적용했다. 발목이 높은 신발을 꺼려하는 조던을 위해 로우컷에 가까운 실루엣을, 호피 무늬 같은 화려함을 원했던 그를 위해 코끼리 무늬의 패턴을 더했다.
그리고 운명의 순간, 팅커 햇필드가 마이클 조던에게 처음으로 보여준 에어 조던 3는 다름 아닌 블랙 시멘트였다고 한다. 그는 흰색 보다 검은색 모델이 조금 더 드라마틱하다고 생각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팅커 햇필드가 말하길, 회의 중 마이클 조던의 태도가 바뀌었으며, 그가 환하게 웃었다고 한다. 팅커와 블랙 시멘트가 나이키를 구원한 순간이었다.
나이키 로고와 점프맨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점프맨 로고는 에어 조던 3에서 처음 적용되었다. 이전까지 쓰였던 윙로고는 에어 조던 1을 디자인했던 피터 무어의 것이었고 에어 조던 디자이너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후에는 점프맨 로고가 계속해서 사용되었다. 정작 마이클 조던 본인은 해당 포즈를 부탁했을 때 싫어했다고 하지만 어쩌면 스포츠 브랜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심볼의 탄생이었을지도 모른다.
점프맨 로고가 중심이 되면서 팅커 햇필드는 자연스레 측면의 나이키 스우쉬를 삭제했다. 하지만 나이키 중역들은 어떻게든 나이키 로고를 꼭 넣어야 한다는 고집을 꺽지않았고, 결국 그래서 신발의 뒤쪽, 힐카운터 부분에 커다란 나이키 로고를 넣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재밌게도 이러한 선택이 디자인적으로 큰 호평을 받아서, 36년이 지난 현재에 와서는 1988년에 만들어졌던 네 가지 OG 컬러웨이에만 나이키 로고를 허락하고 그 외에는 점프맨 로고를 넣고 있다. (물론 몇몇 한정판에 예외는 있다)
NBA 올스타게임
에어 조던 3 블랙 시멘트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인 것은 시카고 불스의 홈에서 열린 1988년 NBA 올스타 게임에서였다. 프리드로우 라인에서 날아올라 슬램덩크 컨테스트 챔프에 올랐을 때는 화이트 시멘트 컬러를 신었었지만 본 게임인 올스타 경기에서는 검은색 블랙 시멘트를 신고 당대 최고의 스타 매직 존슨을 상대했다.
앞서 루키 시절에 검은색과 빨간색 조합의 에어 조던 1 브레드는 80년대 NBA 규정 때문에 신을 수 없게 되었고, 에어 조던 2에는 아예 검은색 모델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NBA 본 경기가 아닌, 다소 규정이 너그러운 올스타 게임에 신고 나왔던 것. 당시에는 한정판 농구화라는 개념조차 없었지만, 마이클 조던이 블랙 시멘트를 신고 코트 위를 밟았을 때, 이 신발이 현존하는 그 어떤 농구화보다 특별하다는 느낌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오리지널에 가장 가까운 복각
에어 조던 3 블랙 시멘트는 1988년에 처음 발매되었고 1994, 2001, 2008(CDP), 2011, 2018년까지 총 다섯 번 레트로 발매가 있었다. 올해에는 그 여섯 번째 레트로가 발매될 예정. 블랙 시멘트는 에어 조던 시리즈 중에서도 유독 레트로 발매가 잦았던 모델인데 그만큼 팬들이 원하는 모델이고 근본 중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또한 올해의 레트로가 더 특별한 이유는 1988년 오리지널에 가장 가깝게 복각된 모델이기 때문이다. 날렵한 형태와 슬림해진 텅, 힐카운터에 위치한 커다란 나이키 로고, 그리고 1988년의 오리지널처럼 낮고 얇게 들어간 코끼리 패턴의 오버레이까지. 오랜 시간 에어 조던의 마니아였다면 참을 수 없는 디자인이다.
2018 vs. 2024
오리지널에 가깝게 복각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논란은 남아있다. 첫째, 코끼리 패턴의 프린트가 너무 옅은 색이라는 것. 지난 해 발매된 에어 조던 3 화이트 시멘트 리이메진드와 비교해도 너무 옅은 색으로 각인된 코끼리 패턴은 적응 하기가 쉽지 않다. 1988년 OG도 그랬다면 납득할 수 있겠지만, 당시 오리지널 모델들은 제조국에 따라 형태, 디테일에 많은 차이가 있었다고는 해도 이렇게 옅은 코끼리 무늬이 개체는 보기 힘들었다.
둘째로, 2018년에 발매된 복각은 텀블 레더의 무늬가 뚜렷한 2024년 레트로는 너무 밋밋하다는 것이다. 에어 조던 3하면 일명 쭈글이 가죽이라고 부르는 가죽 패턴이 도드라지는 것이 특징인데, 많은 팬들이 아쉬움을 표했다. 하지만 2018년 레트로의 가죽은 진짜 텀블 레더가 아닌, 일반 가죽에 텀블 레더 패턴을 찍은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인위적인 느낌이 강했다. 오히려 이번 2024년 레트로의 가죽이 더 부드럽고 좋은 것이 쓰였다. 게다가 2018년 레트로는 신발 실루엣 자체가 전체적으로 너무 두툼하고 패딩도 두꺼워서 둔하게 보이는 반면, 올해의 레트로는 1988년 오리지널에 가장 가깝게 날렵한 형태를 가졌다.
최근 스니커씬의 열기가 많이 식은 것은 국내 뿐만 아니라 본토인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새로운 신발을 찾고 있고 에어 조던을 사기 위해 밤 새고 매장 앞에서 캠핑을 하던 것도 이제는 옛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어 조던 3 블랙 시멘트가 다시 한번 나이키를 혹은 차게 식은 스니커씬을 구원할 수 있을까? 1988년 오리지널부터 2018년의 다섯 번째 레트로 모델까지, 스니커 유행의 여부와 관계없이 블랙 시멘트는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