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가 사상 처음으로 성과급의 최대 50%를 자사주로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과거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 제도를 운영한 적은 있어도 성과급 중 일부를 자사주로 지급한 적은 없다.
성과급으로 자사주를 선택한 임직원은 해당 금액의 15%만큼을 현금으로 더 받게 되며 자사주는 1년간 팔 수 없는 조건이다. 특히 임원은 책임 경영 차원에서 성과급의 최소 40%를 자사주로 의무적으로 받도록 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달 말 지급 예정인 초과이익성과급(OPI)을 이처럼 지급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OPI는 사업부가 연초 목표를 초과 달성할 경우 주는 성과급 제도로 연봉의 최대 50%까지 매년 한 차례 지급한다. 방안의 핵심은 임직원이 자신의 성과급 가운데 0~50%를 자사주로 받는 옵션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회사 측은 이런 방안이 최종 확정되면 1월 중순 사내 공지할 계획이다.
성과급을 자사주로 받기 원하는 임직원은 세금을 제하기 전 OPI의 최대 50%까지 주식 보상을 택할 수 있다. 다만 1년 보유 조건이 따른다. 일정 기간 주식을 팔지 못해 제약이 생기는 만큼 자사주 보상액의 15%는 현금으로 추가 지급한다. 가령 세전 기준 OPI가 1000만 원인 직원이 50% 자사주 보상을 택할 경우 500만 원은 자사주로, 575만 원(OPI 500만 원+자사주 지급분의 15%인 75만 원)은 현금으로 받게 되는 것이다.
임원의 경우 책임 경영 차원에서 OPI의 최소 40% 이상을 자사주로 받도록 할 방침이다. 성과급 대신 지급되는 자사주 수량은 다음 달 28일 종가 기준으로 확정된다.
다만 현재 삼성전자는 보유한 자사주가 없다. 2018년 보유 중이던(4조 8000억 원 규모) 자사주 전량을 소각했기 때문이다. 이번 임직원 성과급 자사주 보상에 쓰일 재원으로는 우선 지난해 11월 발표한 10조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자금 중 소각(3조 원)을 제외한 7조 원 투입이 거론된다. 이외에 기존 성과급 목적으로 준비해둔 예산을 자사주 매입에 추가 투입하는 방안도 있다.
삼성전자가 도입을 검토 중인 성과급의 자사주 지급은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제도로 불린다. 성과급을 주식으로 제공해 임직원과 주주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킬 수 있고, ‘자발적 근로 의욕 고취→실적 제고→주가 상승→보상 확대’라는 선순환을 유인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재계에서도 RSU를 도입하는 그룹사가 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의 OPI 자사주 지급과 유사한 제도를 2023년에 이미 받아들였다. 한화그룹은 연내 전 계열사에 도입 예정이고 두산그룹은 2022년부터 주요 계열사에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이런 행보는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관점에도 부합한다는 평가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10조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발표를 했지만 이날 주가는 5만 3700원으로 당시(5만 3500원) 수준과 별반 다르지 않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03배로 경쟁사인 SK하이닉스(2.56배)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고대역폭메모리(HBM) 기술 경쟁에서 뒤처진 게 가장 큰 원인이지만 주가 부양과 연계된 직원 보상 체계도 영향을 줬을 수 있다.
그간 외부에서는 삼성전자의 성과 보상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일부 임원의 자사주 매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삼성전자의 현금 지급 보상 시스템은 인재 이탈 등으로 연결될 소지가 있다”며 “주식 보상 시스템을 만들어 회사 발전과 임직원 성과를 일치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