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분명히 한덕수였는데?”
5월 11일 이른 아침, 전화기 너머에서 후배 기자가 절규했다. 그는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 관련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번 주 초 전직 고위 관료를 만나기로 돼 있었다. 그 약속은 미처 기사화하지 못한 기왕의 취재 자료들과 함께 순식간에 값어치를 잃었다.
중앙일보의 프리미엄 유료 구독서비스 더중앙플러스에 ‘6·3 대선주자 탐구’(이하 ‘탐구’)를 연재하기 위해 올 초 취재팀이 머리를 맞댔다. 그리고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사상·전략·공약 같은 것들이 배제된 ‘인생 이야기’로 기사 톤을 잡고, 형식은 ‘기전(紀傳)체’와 ‘편년(編年)체’를 병행하기로 했다. 각 후보를 ‘열전(列傳)’ 형태로 다루되 일대기식으로, 시대 흐름에 따라 서술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리고 고심 끝에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의 김문수·안철수·홍준표·한동훈 후보를 취재 및 연재 대상으로 결정했다.
놀랍고 끈질긴 김문수의 생명력
‘윤’잡은 채로 본선 역전 가능할까
최종 승리 위해선 빠른 결단 절실
각각 1~2인씩 배분받은 기자들은 일단 후보 1인당 3회분의 기사를 준비한 뒤 대선일이 결정된 바로 다음 날(4월9일)부터 연재에 돌입했다. 변수는 역시 국민의힘이었다. 경선이 11명→8명→4명→2명으로 추려지는 토너먼트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탐구’ 역시 그 흐름에 따라 중도 탈락한 후보는 가차 없이 연재를 중단하기로 했다. 다행히도 미리 선택한 후보 4인이 모두 ‘빅4’에 들어 일단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희비가 엇갈린 건 결승 진출자들이 가려지던 날이었다. 홍준표·안철수 후보가 탈락하면서 두 후보 담당 기자들은 그대로 연재를 중단해야 했다. ‘탐구’의 세계에서 두 후보가 정치 입문도 해보지 못하고 각각 검사와 안랩 CEO인 채로 ‘얼음’이 돼 있는 이유다.
김문수 후보를 맡았던 기자는 고민 끝에 3회분 안에 그의 정치 입문 이전 이야기를 모두 담았다. ‘과연 그가 더 나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에 일단 가장 극적인 순간들을 모두 내보내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김 후보는 끝없이 나아갔다. 강력한 두 후보를 제친 데 이어 결승에서 한동훈 후보까지 넘어서면서 최종 후보 자리를 거머쥐었다. 그리하여 그의 이야기는 일찌감치 후보 지위를 확정한 이재명 후보와 동일하게 6회차까지 이어져 있다.
더욱 놀랍게도 그는 지난 주말의 ‘막장 단일화’ 사태를 지켜보며 ‘김문수 7회’가 아니라 ‘한덕수 3회’를 준비하던 취재팀을 보란 듯이 좌절시켰다. 그 덕택에 ‘탐구’ 시리즈 속에서도 경기지사를 2연패 하는 생의 절정기를 살아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그의 목표가 ‘탐구’에서의 연명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다. 대선 후보 자리가 목표일 리도 없다. 그의 목표는 대선에서 승리해 취재팀이 ‘김문수 본기’(本紀)를 작성하도록 만드는 것일 거다.
하지만 과연 그는 본선에서도 더 나아갈 수 있을까. 김 후보는 지지율 조사에서 이재명 후보와 큰 차이를 보인다. 게다가 지지율에 중력을 행사하는 짐까지 잔뜩 메고 있다. 그중 하나인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결별 주문에 대해 김 후보는 완강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는 결코 의리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선거전략 측면에서도 백해무익하다는 게 명백한데도 말이다. 그 뒤에 도사린 세력, 즉 “부정선거!”를 외치며 여전히 윤 전 대통령을 결사옹위하는 ‘아스팔트의 전사들’ 역시 그의 확장성을 저해하는 짐이다.
짐들을 빨리 버려야 하는 이유는 그의 앞뿐 아니라 뒤에도 있다. 계엄으로부터, 탄핵으로부터,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자유로운 젊은 후보가 그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취재팀이 꽁꽁 아껴뒀다가 국민의힘 후보 확정 직후인 11일부터 연재하기 시작한 ‘이준석 열전’의 주인공이 그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신문물로 무장한 채 쏟아내는 신세대의 혁신적 아이디어는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그는 ‘보수 적장자’와 ‘노무현 정신의 계승자’를 동시에 자임하면서 운신의 폭까지 크게 넓히고 있다. 3자 구도 하의 대역전극이 골자인 ‘동탄 모델’의 저작권자라는 사실 역시 무시 못 할 대목이다.
선거는 흐름이며 기세다. 그와의 지지율 간극이 좁혀지기라도 하면 김 후보는 또 다른 단일화 요구에 직면할 수 있다. 그때는 요구 주체가 ‘어둠의 세력’이 아니라 보수 지지층 전체일 것이다.
“전쟁터에서는 젊은 사람들의 에너지가 늙고 우유부단한 사람들의 경험을 전부 합친 것보다 더 올바른 길을 가르쳐주는 일이 흔히 있다.”(『전쟁과 평화』 중) 톨스토이 역시 김 후보에게 빠른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