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걱정 해소 카운슬링 역할
개인·공동체, 안녕·결속 순기능
조력 한계 넘은 정치의 무속화
나라 망칠 원인됨을 경계해야
신년이 밝았다. 다들 사주나 토정비결은 보셨는지. 역술인을 찾아 새해의 길흉화복을 점쳐 보는 일은 우리의 오랜 전통이다. 요즘은 인터넷 사주카페를 찾기도 하고, 무속인의 인스타를 찾아 DM으로 예약하는 경우도 있다. 기업인과 정치인도 예외는 아니다.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올 한 해 뭘 조심해야 하는지, 궁금한 점이 차고 넘친다.
과학과 이성의 시대에 주술이라니 이 무슨 시대착오적 상황인가 개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실제 조사를 보면 국민의 60%는 점집에 아예 발을 들인 적이 없다. 하지만 미래에도 그럴 거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전통이란 소리 없이 찾아와 살아가는 방식에 올무를 씌우는 것과 같은 거니깐.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은 시험, 이직, 투자를 앞두고 역술인을 찾는다. 사람은 믿어도 되는지, 연애운은 있는지 꼼꼼히 정리해 빠뜨림 없이 묻는다.
사람들은 왜 무속을 찾는가?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 때문이다. 197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경험하면서, 부모 세대는 가족의 행복과 물질적 풍요를 좇아 쉼 없는 삶을 살았다. 조금이라도 머뭇대면 단박에 뒤처지고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절박함이 불안을 낳았다. 여러 세대가 지나 세상은 더욱 풍요로워졌지만, 자녀 세대가 느끼는 불안함은 부모 세대보다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영어유치원에 발을 디디며 무한경쟁이 시작되고, 걱정과 불안은 세대를 가리지 않고 엄습한다. 무속이 자라날 토양은 여전히 비옥한 셈이다.
내 미래는 어떨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 가족이 피해야 할 위험은 없는지 역술인에게 묻고 또 묻는다. 여기에서 이들은 심리 카운슬러로, 조언자로, 내 이름을 불러주고 위로해 주는 다정한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삶에 대한 강렬한 열망, 뒤처지면 끝이라는 강박관념이 주술가의 현대적 효용을 극대화했다. 결국 점술, 무속은 개인과 공동체의 안녕과 결속을 키워주는 순기능을 해온 셈이다. 정신적 빈곤 속에서도 정신의학자가 아니라 역술인을 찾는 게 우리의 솔직한 모습이지 않나.
K컬처가 전 세계인의 이목을 끌면서, 무속이 하나의 문화 예술 장르로 거듭난 점도 흥미롭다. 지난 연말 공개 후 연일 화제인 ‘오징어 게임 2’에도 무당이 등장한다. ‘천지신명’을 소환해 사람들로 하여금 게임을 이어가도록 선동한다. 작년 1191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파묘’에는 신세대 무녀가 컨버스화를 신고 굿판을 벌였다. 2016년 678만명이 본 영화 ‘곡성’에서 황정민은 수트에 머리를 질끈 동여맨 신들린 박수무당 연기로 찬사를 받았다.
개인과 집단의 안녕, 결속은 사회를 사회가 되게 만드는 필수적 요소이다. 무속이 적절한 카운슬링 기능을 제공하고, 시민들이 이를 하나의 소비재로 한정해 접근할 수 있다면, 이 오래된 한반도의 샤머니즘 전통은 골칫거리가 아닌, 사회적 자양분으로 환영받을 수 있다. ‘열심히 해 봐라’, ‘이렇게 해 봐라’, 내 눈높이에서 조언해 주고 위로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살아가는 데 작지 않은 힘이 된다.
문제는 무속인 스스로가 조력자의 지위를 망각하거나, 또 이들에게 그 이상의 지위를 부여하고자 하는 일탈자가 발생할 때이다. 12·3 계엄을 통해 이 병폐적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아기보살로 불리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지방의 무속인을 찾아 ‘거사’를 상담하고, 윤석열 대통령의 관상과 사주를 살펴 계엄을 적극적으로 부추겼다. 윤 대통령 자신이 유튜브 무속 콘텐츠에 빠져 부정선거에 대한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맥락은 우리가 이미 아는 대로이다.
‘정치의 무속화’는 윤 대통령이 대권 후보인 시절 때부터 이미 전조가 나타났다. 대선 토론 때 손에 왕(王)자를 새겼고, 각종 법사, 도사가 자문역으로 출몰할 때부터 명태균 미륵의 손에 놀아날 때까지, 주술의 그림자가 넓고 깊게 드리웠다. 대통령 스스로가 극단적으로 고립되고, 주체적인 사고와 판단 능력을 상실했을 때, 주술은 가장 큰 파열음을 냈다. 국가의 최고 리더가 나서 무속의 합당한 경계를 허물고, 점술에 기대어 반헌법적, 시대착오적 의사결정을 감행한 것이다.
교훈은 무엇일까? 결국 주체적 사고가 중요하다. 나라의 운명을 제멋대로 예언하고, 자극적으로 사람들을 홀리는 사이비 점성술사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나 스스로 중심을 잡아야 한다. 가짜뉴스에 대응하는 디지털 리터러시가 중요한 것처럼, 세상을 호도하는 세력에 대응할 내 마음의 힘이 중요하다. 정보와 식견을 갖춘 사람들을 가까이하는 것도 필요하다. 주위의 조언과 도움을 발판 삼아 더 나은 선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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