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조승진 기자 =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은 이 말을 하며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사법고시 합격 후) 김장하 선생님께 고맙다고 인사를 갔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내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혹시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 사회에 갚아라'라고... 제가 조금의 기여를 했다면, 그 말씀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 선고 이후 문 대행에게 장학금을 주며 지원한 김장하 선생의 이야기가 다시 회자되고 있다. 고학생이었던 문 대행은 '김장하 장학금'을 받은 1000여명이 넘는 이들 중 한 명이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김장하 선생에게 장학금을 받았다고 밝힌 다른 한 교수는 "그냥 선생님을 뵙고, 선생님이 '이번에 얼마 나왔어?'라고 한 뒤 (바로) 현금을 세어서 줬다. 나는 도움을 받는 자였지만, (그것이 나를) 위축시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주변에서 말하는 김장하 선생의 선행은 차고 넘친다. 장학금뿐 아니라 학교 설립 후 지역 환원,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이웃에게 담보 없이 금전을 내주고,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시설 건립, 지역 환경 운동, 문화예술 후원에도 나섰다. 그러면서도 대접받기를 극도로 꺼리는 그는, 어느 자리에 가서도 끄트머리에 앉았고 본인을 기념하는 어떤 행사도 열지 못하게 했다. 생색 내지 않고 그저 말없이, 필요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손을 내밀었다.
하수상한 시절, 시간이 흐를수록 분명하게 드러나던 각종 부정의에 누군들 분노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지치지 않고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었던 건, 지난 겨울부터 김장하 선생을 떠올리게 하는 수많은 무명씨가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는 사실 역시 함께 드러났기 때문이다.
계엄이 선포된 깜깜한 밤 너나 할 것 없이 국회로 뛰쳐나간 이들, 응원봉을 들고, 깃대를 올리고, 아이 손을 붙잡고, 사랑하는 연인의 팔짱을 끼고, '혼자 어떻게 집에서 편하게 있을 수 있겠냐'며 손발이 꽁꽁 어는 날씨에도 늘 집회 한켠을 지키던 이들. 역사에 이름 없는 무명씨로 존재하는 이들을 집회 현장에서 만날 때마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닌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열망을 들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이 지금껏 지탱될 수 있었던 건 이름 없는 김장하들이 그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은 채 곳곳에서 조용히 제 몫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수많은 김장하들의 연대가 필요하다. 윤 전 대통령의 퇴거 파티 의혹이 계속되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내란 피의자인 이완규 법제처장을 헌법재판관 후보로 지명했다.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반성이나 나라를 살려야 한다는 최소한의 책임조차 엿보이지 않는다. 아직까지도 무엇이 정의인지 묻게 되는 지금, 내란 가담자들에 대한 확실한 단죄, 그리고 정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수많은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거리의 이름 없는 김장하들이 또다시 함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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