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금융'과 '생산적금융'이 걱정되는 이유

2025-12-02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가 공감을 얻으며 최근 종영했습니다. 김부장이 맞닥뜨린 현실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반복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직장에서 밀려난 중년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대리기사나 자영업 밖에 없는 현실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금융정책 측면에서 보면 '포용금융'과 '생산적금융'을 이야기할 때 빠뜨리기 쉬운 핵심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포용금융 확대와 생산적금융 강화를 강조하고 있는데요. 취지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지만 금융이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의 경계를 보다 솔직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장 잠재력이 높은 신산업 분야 스타트업은 대부분 은행 대출보다 벤처캐피털 등의 투자를 유치하게 됩니다. 은행 대출이 필요한 쪽은 비교적 리스크가 높거나 성장성이 제한적인 기업들이죠. 은행 입장에서는 "대기업 외에는 돈을 빌려줄 곳이 없다"는 볼멘소리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은행권의 이런 하소연을 단순한 불평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은행은 금융소비자 보호와 건전성 규제가 촘촘하게 적용되는 업권입니다. 리스크를 감수하라면서 동시에 건전성도 유지하라는 주문은 양립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인공지능(AI), 로봇, 바이오 등과 같은 신산업 분야가 아닌 단순 제조업은 어떨까요. 영업이익률이 높아봐야 5% 안팎에 그치고 있는 상황에서 대출을 통한 설비투자 확대가 과연 '생산적'인 대출인지 의문이 남습니다. 설비투자라는 단어의 어감은 긍정적으로 들리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남는 게 없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습니다.

포용금융 역시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 금융으로 어려운 자영업자를 돕는 정책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게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실패한 자영업자들이 다시 산업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는 통로가 막힌 현실을 외면한 채 금융지원만 반복하면 결국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꼴에 불과합니다. 포용금융이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산업구조 개편이 먼저 논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입니다.

결국 핵심은 금융이 무엇을 해결할 수 있는지 명확히 인식하는 데 있습니다. 산업 생태계가 경직된 상황에서는 기업이 금융 지원만으로 생산성과 성장성을 끌어올리기 어렵습니다. 정책이 금융에 더 많은 역할을 요구하고 있는 지금의 흐름이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은행을 더 세게 비틀어 기업대출을 늘린다 해도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드라마 속 김부장은 퇴직금 5억원을 상가 매매라는 마지막 기회에 쏟아부었지만 알고보니 분양사기였습니다. 손쉽게 큰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오히려 치명적인 위험을 불러온 셈입니다.

퇴직 후 대리기사를 전전하던 김부장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대출'이 아닌 땀 흘리며 일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포용금융과 생산적금융의 본질도 여기에 있습니다.

금융만으로는 어려운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없고, 산업과 일자리 구조가 함께 움직여야 지속 가능한 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필요한 건 은행이 돈을 더 빌려주거나 이자를 감면해주는 일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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