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물게 보는 아름다운 이별이었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KNSO)의 제258회 정기연주회가 열린 지난 5일 밤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앙코르 곡(아나톨리 랴도프의 ‘바바 야가’) 연주가 끝나고 관객들의 커튼콜이 이어지던 중 김민균 악장이 일어나 손짓으로 관객들에게 박수를 중단해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가 단원들을 향해 돌아서며 활을 긋자 오케스트라 전체가 구슬픈 선율을 쏟아냈다. 작별 노래의 대명사와도 같은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랭 사인’이 콘서트홀을 가득 채웠다. 김 악장과 이지수 제1바이올린 수석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고, 다른 단원들도 북받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관객들의 커튼콜에 화답해 무대로 나오던 다비트 라일란트 KNSO 예술감독(46)은 뜻밖의 연주에 무대 귀퉁이에 멈춰 서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오케스트라 관계자가 그의 손에 꽃다발을 안기고 그를 무대 중앙 포디엄(지휘대)으로 안내했다.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나왔지만 라일란트는 단원들을 바라보며 눈물만 흘렸다.
이날은 예술감독 임기를 마친 라일란트의 고별 공연이었다. 벨기에 출신으로 2022년 3년 임기의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그는 KNSO의 역량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받는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지휘자와의 이별을 아쉬워 하며 고별 공연에서 특별한 연주를 준비하는 건 보기 힘든 일이다. 클래식 음악계에선 때로 권위적인 지휘자들이 단원들에게 고압적인 자세를 취해 뒷말이 나오는 경우가 있지만, 라일란트는 따뜻한 성품을 바탕으로 단원들과 가족 같은 신뢰를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공연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빅토리아 뮬로바(66)가 협연한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과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라벨 편곡 버전)으로 이뤄졌다.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던 뮬로바의 연주는 아쉬웠지만, 퇴임하는 지휘자를 위해 단원들이 전력을 쏟아부은 ‘전람회의 그림’은 짜릿한 전율을 선사했다.

앞서 라일란트는 고별 공연을 이틀 앞두고 열린 지난 3일 퇴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KNSO 단원들과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그는 “유럽 단원들은 굉장히 개인적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내가 더 빛날까’라는 마음가짐을 가진 반면 한국 단원들은 ‘내 재능을 어떻게 하면 전체 오케스트라를 위해 잘 사용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한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클래식 음악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할 주체는” 한국 음악가들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음악가이고,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 역할을 하며 전체를 이뤄내는 협력자”라며 “지휘자가 아닌 좋은 인간으로 기억해달라”는 소망도 전했다.
라일란트는 고별 공연 다음날인 지난 6일 출국했다. 2018년부터 맡고 있는 프랑스 메스 국립오케스트라 음악감독과 스위스 로잔 신포니에타의 수석 객원지휘자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KNSO는 5일 ‘올드랭 사인’ 연주를 담은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내딛는 새로운 걸음마다 당신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헌신 그리고 사람을 향한 마음을 기억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영상 제목은 이렇다. “À bientôt, Maestro(다시 만나요, 마에스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