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굴기' 중국, 소련과 우주경쟁하던 美 닮았다 [위클리 디지털포스트]

2025-04-22

반도체 수출 제한, 중국의 굴기 저지했을까

[디지털포스트(PC사랑)=이백현 기자] 현대 사회에서 기술 발전을 추동하는 건 주로 '돈이 되느냐'입니다. 한번 '돈이 되는 분야'라는 인식이 생기면 너도나도 기술개발에 뛰어들고, 그게 이윤으로 이어지면 경쟁자들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산업의 파이 자체가 커지게 됩니다. 오픈AI가 챗GPT로 AI 시대를 연 것이 이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기술 발전을 추동하는 요인 중에는 '경제의 논리'보다 더 강력한 것도 존재합니다. 미국이 1960년대에 우주선을 만들어 달으로 보낼 수 있었던 이유, 2차대전기 자동차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이유에는 '경제의 논리' 이상의 것이 적용되었기 때문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자동차산업은 눈부신 발전을 이뤘습니다. 독일 폭스바겐 '비틀'의 원형은 히틀러 시절 군용 차량 개발에서 출발했죠. 미국의 경우 '포드주의'라 불리는 컨베이어 시스템이 무기 및 차량 생산에 도입되면서 시간당 생산량과 품질 관리기술이 크게 향상되었고, 이는 전후 자동차 산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줬습니다.

반대로 '차세대 자동차'를 노리는 '에어 택시'나, 드론과 같은 새로운 운송 수단의 경우 소식이 들린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민간 보급은 상대적으로 더디게 이뤄지고 있는 게 느껴지지 않나요? 애초에 드론이 가장 유의미하게 활용되고 있는 곳은 다름아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기도 하고요. 우크라이나가 비교적 싼 가격의 드론으로 러시아의 탱크를 요격해 활약한 것은 현대전의 주요 변화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뉴스레터의 주인공은 '경제'가 아닌,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를 다룬 '전쟁'입니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 제한은 중국의 소위 '반도체 굴기'를 저지하려는 의도에서 실행되고 있습니다. PC 마니아나 게이머들에게는 엔비디아 그래픽카드 '지포스 RTX 4090'이 수출 제한 품목에 포함됐던 것을 선명하게 기억하실 겁니다.

이러한 반도체 수출 제한 정책은 중국의 IT 경쟁력, 특히 이제는 'AI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힘센 두 나라의 반목이니 만큼 전 세계가 영향을 받고 있죠. 지금 당장 이슈가 되고 있는 관세 전쟁이 타협으로 마무리되더라도 이 반도체 수출 제재는 미국의 기본적인 대중정책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큽니다. 반도체 제재 속에서도 중국은 '딥시크 R1'과 같은 AI 모델을 선보이며 저력을 보여줬으니, 이제와서 제재가 없었던 시절으로 돌아가기에는 늦었다고 봐야할 겁니다.

그럼 미국의 제재 조치는 정말로 중국의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데 성공했을까요?

대답은 아쉽게도 이제 'NO' 쪽에 가까워지는 듯 보입니다. 단기적으로는 성공한 전략처럼 보였으나,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중국의 '반도체 자생력'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죠. 미국 반도체 제재의 가장 큰 타깃이었던 중국 화웨이는 애플처럼 자체 운영체제(하모니OS)로 구동되는 스마트폰에 자체 반도체(하이실리콘)를 탑재하는 기업이 되었고, 딥시크는 자사 AI 모델 개발에 화웨이 칩을 사용했습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남일이 아닙니다. 화웨이는 세계 최초로 두 번 접히는 폴더블 폰 '메이트 XT'를 선보였고, 이 제품은 글로벌 시장의 호평을 이끌어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저가 공세로 DDR4 메모리 시장을 집어삼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중국은 미국의 제재 속에서 어떻게 반도체 자립을 이뤄냈을까요?

중국 정부의 막대한 자금 지원, 인재·기술 유출 시도도 그 원인으로 지목될 수 있겠으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반도체 경쟁이 더 이상 '경제의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고 봐야 할 겁니다. 중국은 명백히 '반도체 전쟁'을 '전쟁의 논리'로 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유인우주선을 통해 최초로 달에 사람을 보내고, '체재 경쟁 승리'를 자축한 뒤, 우주선 기술이 오랜 기간 동안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됐다는 사실을 혹시 알고 계신가요?

1960년대, 미국이 달으로 유인우주선을 쏘아올린 데에는 소련과의 냉전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있었습니다. 소련이 먼저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올리자, 미국은 엄청난 충격과 위기감을 느꼈죠. 군사적으로는 '소련이 우주에서 미국을 감시하거나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게 아니냐'는 공포가 확산됐습니다. 정치적으로는 '공산주의 체제가 과학 기술에서도 앞섰다'는 인식이 확산됐죠.

이걸 사람들은 '스푸트니크 쇼크'라고 불렀습니다. 딥시크 등장 당시의 충격을 '딥시크 쇼크'라고 불렀던 것, 기억하시나요? '딥시크 쇼크'는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등장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딥시크 쇼크'와 그때가 달랐던 점은, '스푸트니크 쇼크'가 미국인들에게 하나의 목표를 갖게 했다는 겁니다.

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 자유세계의 승리... 지금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이 미국의 유인우주선 프로젝트에 걸려 있었습니다. 소련과의 경쟁 의식은 '우리가 먼저 달에 사람을 보내야 한다'는 공통된 목표를 미국인에게 갖게 했죠. 결과적으로 닐 암스트롱은 달 표면에 발을 내디디는 데 성공하고, 이후 소련은 유인 달 탐사에서 사실 상 철수하게 됩니다.

1960년대에 인류가 달의 표면을 밟을 수 있었던 까닭은, 냉정하게 표현하면 '체재 경쟁이 가지는 결집 효과'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적국을 이겨야 한다는 '전쟁의 논리'가 적용했다는 겁니다. 이 시기 개발된 우주 기술은 나중에 미국 정부가 복원하려고 보니 '이 시절에 어떻게 이걸 만들었지?'라고 감탄할 만큼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상업성을 갖지 못한 우주기술은 그 이후 오랜 기간 정체됐고 2000년대에 들어서야 겨우 민간 우주기업이 등장하게 됩니다.

즉 이 대목에서, 우리는 때때로 '전쟁의 논리'가 '경제의 논리'를 아득히 뛰어넘는 역량을 가져온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지금의 중국이 반도체 경쟁을 대하는 태도가, 바로 1960년대의 미국을 연상시킨다는 점에 있습니다. "뭔가 해내겠다는 중국 학생들 눈빛… 30년前 우리 떠올라" 제가 최근 인상깊게 본 기사의 제목인데요. 기사에서 하버드 의대 윤석현 교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시죠. "요즘에 나는 중국 학생들의 눈빛에서 어떤 결기를 본다. 30년 전 나의 모습을 그들이 갖고 있다."

우려스러운 점은 미국의 반도체 제재, 그리고 관세 전쟁이 중국에게 위기의식을 안겨주고, 이것이 도리어 결집력이 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지지율은 90%에 육박했다는 점은 '전쟁의 논리'가 가지는 결집력을 잘 보여주는 사례죠.

미국의 반도체 제재와 관세 부과는, 중국인에게 '이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마음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서방 세계에선 '쇼크'였던 딥시크가, 중국에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미국이 '경제의 논리' 속에서 사고하고 움직이는 동안, 중국은 이미 '신(新)냉전' 시대를 맞을 마음의 준비를 마친 듯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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