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는 아름답다”고?…모두를 ‘패자’로 만들고도 그럴 수 있을까

2025-03-0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국내외 언론에 매일같이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관세’다. 트럼프는 지난해 치러진 대선 시기부터 여러차례 말해왔다. “관세는 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다.” 취임 후 그는 고관세 부과로 중국을 비롯한 대미 흑자국을 제압하려는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다.

트럼프 집권 이전에도 관세전쟁은 있었지만 유사 사례를 찾으려면,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미국 무역사의 권위자 더글라스 어윈(다트머스대 경제학과 교수)은 말한다. “트럼프가 계획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관세 인상을 찾으려면 거의 1세기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2월4일,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기고문)

20세기 이후 미국이 벌인 크고 작은 관세전쟁 몇 가지를 살폈다. 관세 인상의 폭이나 품목, 여건이 각기 달랐지만 결과는 유사했다.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무역전쟁에선 참전자 모두가 패배한다”(남시훈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사실이다.

■최고 400% 부과 ‘스무트-홀리’ 관세법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 동네에 미국산 자동차를 모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그가 차를 몰고 나갈 때마다 행인들은 욕설을 퍼붓는다”(1930년대 초 이탈리아 기업인의 말, <무역의 세계사>)

1930년 서구에서 ‘반미주의’를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사건이 있었다. 1929년 대공황 발발 뒤 미국이 광범위한 수입품에 고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한 것이다. 수입품에 최고 400%를 부과하는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이때 만들어졌다. 미국은 이 법에 따라 2만여개 품목에 대해 평균 59%까지 관세를 부과했다. 각국은 반발했다. ‘미국산 자동차’를 보면 욕설을 내뱉었다는 이탈리아인의 발언은 당시 유럽인들의 미국에 대한 ‘민심’이 어땠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1920년대 미국 경제는 잘나가고 있었다. 1차 세계대전으로 초토화된 유럽과 달리 전쟁특수를 누리며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그러다 갑작스레 대공황이 닥쳤다. 대공황의 원인에 대해선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대공황을 악화시킨 것 중 하나로 공통되게 지목당하는 정책이 스무트-홀리 관세법이다. 수입품에 고관세를 매겨 자국 산업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였지만, 결과는 딴판이었다. 독일·영국·프랑스 등 주요국들도 경쟁적으로 관세를 높이며 극단적 보호주의 물결이 서구를 휩쓸었다. 세계 교역량은 60%(금액 기준)이상 줄었다. 안 그래도 대공황에 신음하던 각국 경제는 더욱 타격을 입었다. 실업률이 치솟고 국가 간 대립이 격화하면서 독일에선 나치즘이 득세했다. 정의정책연구소장을 지낸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위원은 “스무트-홀리 관세법으로 인해 대공황이 더 악화돼 결국 2차 세계대전까지 갔다고 보는 시각이 많고,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1930년대의 교훈은 미국을 자유무역으로 이끌었다. 2차 대전 종전 이후 미국은 세계에 자유무역 체제를 수립하고자 애썼는데, 여기에는 각국이 무역으로 긴밀히 얽혀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었다. 당시 국무장관을 지내며 저관세 정책을 밀어붙였던 코델 헐은 이런 말을 했다. “물자가 국경을 건널 수 없으면, 군인이 건넌다.” 이러한 노력으로 1947년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이 체결됐고, 이후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한다.

자유무역으로 선회한 이후 미국의 관세전쟁은 소규모 국지전이었다. 예를 들면 1960년대 미·유럽 간 닭고기 싸움이 있었다. 미국이 닭고기 생산을 늘려 유럽에 공격적으로 수출하자 당시 유럽경제공동체(ECC)가 미국산 닭고기에 25%의 관세를 물린 것이다. 미국은 광범위한 보복관세를 매겼고 유럽은 결국 관세를 철회했다.

한국에 영향을 끼친 사례로는 미·일 반도체 분쟁이 있다. 1980년대 일본은 세계 최대 대미 흑자국이었다. 제2의 진주만 공습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특히 반도체의 공격적 대미 수출이 두드러지자 미국은 반덤핑 관세 부과 예고 등 전방위 압박을 펼쳐 일본의 수출길을 크게 좁히는 미·일 반도체 협정을 맺었다. 특히 달러화 가치를 내리기 위해 일본 엔화 가치를 올린 플라자합의는 대일 압박의 ‘정점’이라 할 만했다.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 전쟁의 수혜를 입었다.

자유무역 질서가 수립된 이후 관세는 사실 무역전쟁의 주요 수단은 아니었다. 자국 수출에 유리한 환경을 인위적으로 만들기 위해 환율에 개입하는 ‘환율전쟁’이 무역전쟁의 주류를 이뤘다. 자국 기업 수출을 늘리기 위한 수출보조금 지급, 상대국 기업에 부담을 줄 수 있는 복잡한 통관절차 등 비관세 장벽도 자주 활용됐다.

트럼프의 등장으로 관세를 무기화하지 않는 전후 무역질서의 ‘금기’는 깨졌다.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가 광범위한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며 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그러자 중국 역시 같은 규모의 미국산 수입품에 25% 보복관세를 물렸다. 관세→보복관세로 이어지던 양국 간 무역전쟁은 2020년 1월 무역협정이 맺어질 때까지 계속됐다.

양국이 치열하게 싸운 결과는 어땠을까. 포연이 걷힌 뒤 확인된 ‘승자’는 미국도 중국도 아니었다. 미·중 무역전쟁을 추적해온 밥 데이비스 기자는 2023년 1월 국제문제 전문지 포린폴리시 기고문에서 “미·중 무역전쟁 기간 동안 베트남의 대미 수출은 500억달러 늘었다”며 “미·중 무역전쟁의 진정한 승자는 베트남이었다”고 말했다.

■다시 세계화를 외칠 것인가

이쯤에서 짚어볼 것이 있다. 트럼프의 관세전쟁이 재개되자 무조건적인 ‘자유무역 찬양론’이 반트럼프 담론으로서 확산하고 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 물결 속의 자유무역은 노동자와 농민의 삶을 악화시키는 등의 부작용을 낳아 많은 큰 비판을 받아왔다. 자본시장의 개방으로 자본은 값싼 노동력을 찾아 이동할 ‘자유’를 얻었고 공산품뿐 아니라 농산물과 서비스 시장까지 개방된 탓이다. 그렇다고 반세계화를 외치며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의 방식이 답일리도 없다.

김병권 연구위원은 “애초 세계화의 폐해를 비판해온 이들이 명확한 대안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문제가 있다”면서 “굳이 과거의 경험에서 찾는다면 WTO를 통해 신자유주의적 모델이 확산되기 이전 1940~70년대까지의 세계화가 더 나았다고 볼 수 있다. 대안에 대해서는 치열한 토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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