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권일 농업인·수필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가 말했다. 물은 만물의 근원이며, 모든 생명체는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90%인 수박만이 아니라, 사람의 몸도 70% 가까이가 물이다. 신체 유지와 기능 활성화를 위해, 충분한 수분 섭취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이다. 그런데 정작 탈레스는, 운동경기 관람 중 탈수증으로 죽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니, 인간사 요지경(瑤池鏡)인 걸 어찌하랴.
자고(自古)로, 치수(治水)는 국가의 최우선 아젠다 중 하나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사후 땜질식 대응이 아니라, 선제적으로 살피고 빈틈없이 대비해야 하는, 국민들 생사(生死)가 달린 일이다. 중국에서도, 물관리를 잘한 순(舜)이란 신하가 압도적 민심(民心)을 얻어, 요(堯)임금의 선양(禪讓)에 의해 황제에 올랐다 하지 않는가. 요순시대 이야기이다.
요즘, 지구촌 물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시도 때도 없이, 한 쪽에선 물 폭탄으로 난리인데, 다른 쪽은 물 부족으로 난리법석이다. ‘지구온난화’가 원인이라고 하는데, 과학적 속사정은 촌부(村夫)의 깜냥으로는 도통 헤아릴 수 없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여태까진 살 만했고 견딜 만했다. 하루 아침에 삶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물 난리와, 거북등처럼 땅이 쩍쩍 갈라지는 가뭄이 해마다 반복되었지만, 장맛비 물러가면 궂은 비 잦아들고, 너무 늦지 않게 해갈의 단비 뿌려주는, 착한 날씨에 순응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비와 가뭄이 갈수록 심각하다. 올해만 해도 기습적 수해(水害)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았다. 그런데, 유독 제주도만 한 달 가까이 기록적인 가뭄과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폭우에 대비하라는 예보까지 있었지만, 내놓은 자식처럼 제주 하늘에서는, 여태까지 감감무소식이다. 오죽하면, 인디언들처럼 비가 내릴 때까지 기우제를 드려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뜬금없는 생각에, 혼자 실소(失笑)를 금치 못한다.
동·서부의 밭작물 농민들은, 씨앗 파종조차 엄두를 못 내 울상이고, 힘겹게 싹을 틔운 농작물들 말라 죽어가고 있는데도, 물이 부족하니 속수무책이다.
감귤농사도 마찬가지이다. 극한 폭염으로 감귤하우스 안은 사우나를 방불하는데, 농업용수조차 찔끔거리니 고온에 시달리는 나무들 헉헉거린다. 노지 감귤이라고 다를까. 땅이 쩍쩍 갈라질 지경이다 보니, 열매들 크지 못해 포도송이만 한 것들 적지 않고, 낙과 피해도 심각하다. 올해 포전거래 가격이 천정부지이지만, 그림의 떡이다. 날씨 이러니, 열매 대신 여름 순(筍)만 무성한 해거리 농장들 많고, 다행히 열매가 잘 달렸거나 고당도를 위해 ‘타이벡’ 깐 농장들도, 과연 수확기까지 잘 견뎌낼 수 있을지, 농부들 가슴이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 농사는 하늘 일곱 몫, 농부 세 몫이라는데, 부지런한 제주농민들에게, 하늘이 무심하지 않기만을 간절히 빌어 본다.
헐! 기우제란 말이 씨가 되었을까. 엊그제부터 단비 내려 타는 목마름에 시달렸던 농부들 이마를 선뜻하게 적시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