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 시작되면서 은행과 증권사의 고객 유치 경쟁이 치열해졌다. 개인형 퇴직연금(IRP) 연금지급 고객 대상으로 수수료를 면제하는 이벤트를 진행하는가 하면, '수익률 1위'라는 점을 앞세운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보험업계의 경우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희미한 모습이다. 보험계약은 실물이전이 불가한 데다, 퇴직연금의 경우 보험사의 미래 수익성을 가늠하는 보험계약마진(CSM) 확보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탓으로 풀이된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31일부터 퇴직연금 사업자 44개 중 37개사(적립금 기준 94.2%)에서 실물이전 제도가 시행된다. 지금까지 퇴직연금 계좌를 다른 사업자로 이전하려면 기존 상품을 팔거나 해지해서 현금으로 돌려받은 뒤 새 상품에 가입해야 했다. 그러나 지난달 말부터는 기존 상품을 해지하지 않고 그대로 다른 사업자로 옮겨 갈아탈 수 있도록 서비스를 도입했다.
이에 금융권의 유치 경쟁도 치열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3분기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 400조878억원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10년 뒤인 2033년이면 퇴직연금 규모가 현재의 2.4배에 달하는 94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지난해 퇴직연금 사업자들이 거둬들인 연간 수수료 수입은 1조4212억원 규모로, 금융사 입장에서는 놓치기 아까운 안정적인 수익원이다.
보험사 중 퇴직연금 사업자는 총 16개사로 은행(13개), 증권(15개)보다 더 많다. 그러나 적립규모는 가장 적다. 3분기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 가운데 은행권 적립 규모는 210조2811억원, 증권사는 96조5328억원, 보험사는 93조2654억원이다.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의 52.6%를 은행이 관리하고 나머지 47%가량을 증권사와 보험사가 나눠 갖고 있는 것이다.
보험사의 경우 퇴직연금 가입자 유치 경쟁에 다소 소극적인 모습이다. 우선 디폴트옵션 상품이나 퇴직연금 계약이 보험계약 형태라면 실물이전이 불가능해 은행이나 증권사보다 이동해오는 자산이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탓이다. 예를 들어 한화생명이 대표 상품으로 특화해서 판매하는 디폴트옵션 상품은 다른 금융사는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실물이전이 불가능하다. 보험계약의 경우에도 자산관리계약과 상품계약이 '일체형' 구조기 때문에 실물이전을 할 수 없다.
이는 보험사 입장에서는 고객 유출을 막는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고객을 다른 금융사에서 끌어오기도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
또 퇴직연금이 보험사의 CSM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도 적극적인 확대를 망설이게 하는 부분이다. 퇴직연금은 안정적인 수익원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새 회계제도(IFRS17)에서는 수익인식계수가 낮다. IFRS17에서는 퇴직연금을 부채로 잡는데, 퇴직연금은 부채 듀레이션(원금 회수까지 걸리는 기간)이 짧아 자산 듀레이션과 차이가 크다. 보험사들이 보장성 보험 비중 확대를 꾀하는 상황에서 퇴직연금에 큰 힘을 쏟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다.
다만 수익률이 높은 일부 보험사들을 중심으로 한 신규 고객 유치 경쟁은 지속할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 지난 3분기 디폴트옵션 가운데 '동양생명디폴트옵션고위험BF1' 상품은 연간 수익률 27.30%를 달성해 전체 퇴직연금 사업자 중 1위를 차지했다. 또 '교보생명디폴트옵션고위험TDF1'의 수익률은 25.73으로 5위, '한화생명디폴트옵션고위험TDF2'는 25.72%로 6위를 차지했다. 디폴트옵션 상위 10개 상품 가운데 은행 상품은 '부산은행디폴트옵션고위험포트폴리오2' 1개뿐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퇴직연금 사업자를 선택할 때는 사업자가 얼마나 지속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내는지가 중요하다"면서 "또 DC형이나 IRP의 경우 퇴직연금 사업자가 운용에 관여하지 않기에 가입자의 지속적인 관리와 적극적인 운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