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피격 '세기의 사진' AP기자, 백악관 복귀 요구 법정투쟁
에번 부치 사진기자, 트럼프 취재 금지조치 맞서 법정 증언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도널드 트럼프 현 미국 대통령이 작년 여름 대선후보 시절 유세에서 총격을 당한 직후 성조기를 배경으로 주먹을 치켜든 사진을 찍었던 에번 부치 AP통신 사진기자가 백악관의 취재 금지 조치에 맞서 법정에서 증언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부치 기자는 27일(현지시간) 워싱턴DC 소재 연방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 참석해 AP통신을 출입기자단에서 쫓아낸 트럼프 대통령의 조치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2기 백악관은 6주 전 그를 포함한 AP통신 기자들을 백악관 출입기자단에서 배제하고 이들의 백악관 행사와 대통령 행사 취재를 불허했다.
AP통신이 기존 '멕시코만'의 이름을 '미국만'으로 변경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침에 순응하지 않고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멕시코만'이라는 명칭을 기사에서 계속 쓰기로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AP통신은 백악관이 자사를 표적으로 이런 조치를 내린 것은 미국 수정헌법 제1조에 규정된 언론의 자유와 적법절차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소송과 함께 출입자격을 복원해 달라는 임시조치 신청을 함께 냈다.
트럼프 1기 초기에 연방판사로 임명된 재판장 트레버 맥패든 판사는 일단 임시조치 신청을 기각한 후 원고 AP통신의 주장을 듣기 위해 이날 변론기일을 열었다.
부치 기자는 재판장에게 "우리(AP통신)는 큰 피해를 보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사이의 의견 충돌 현장,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백악관 방문 등 생생한 현장을 취재하지 못하게 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진기자로서 하는 일 없이 앉아 있어야만 하는 힘든 시기였다"고 말했다.
부치 기자는 맥패든 재판장에게 대통령을 취재하는 통신사 업무는 초 단위로 평가가 이뤄지며 전세계에 사진을 보내는 일이 경쟁사보다 몇 초만 늦어도 참패로 간주된다고 설명하며 현장 접근이 사활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출입기자단에서 쫓겨나기 전에는 사진 송고가 늦어지지 않도록 미국 3대 이동통신업체 버라이즌, AT&T, T-모바일의 휴대용 무선인터넷 기기를 각각 하나씩 들고 다녔다고도 설명했다.
그는 또 AP가 백악관 출입기자단에서 핵심 위치를 차지해 온 오랜 역사도 재판장에게 설명했다.
부치 기자는 21년간 백악관 출입기자로 등록돼 있었다.
법무부를 대표해서 나온 브라이언 후닥 변호사는 AP가 제휴관계를 맺은 언론사나 프리랜서의 사진을 고객사들에게 송고한 예를 제시하며 AP가 직접 현장취재를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후닥 변호사는 AP통신의 배포망을 통해 유료로 판매된 트럼프와 마크롱이 함께 찍힌 프리랜서의 사진을 증거로 제시하자 부치 기자가 "노출이 딱 봐도 엉망이군요"라고 말해 방청객들이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나중에 증인으로 나온 AP의 백악관 취재팀장 지크 밀러는 2월 11일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으로부터 AP가 트럼프의 '미국만' 명칭을 채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일 행사 참석에서 배제됐다는 통보를 받았으며 그 후로 출입기자단 추방 조치로 이어졌다고 증언했다.
맥패든 재판장은 이날 종일 변론기일을 열고 여러 증인들의 증언을 청취했으나 결론은 내리지 않았다.
부치는 작년 7월 13일 대선 유세장에서 총격을 당한 뒤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단상에서 내려오던 트럼프 후보가 귀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결연한 표정으로 지지자들에게 주먹을 치켜든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전 세계에 송고한 기자다.
이 사진 속에서 트럼프는 푸른 하늘에 나부끼는 성조기를 배경으로 영웅적인 분위기를 풍겼고, 이는 그에게 강인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더해줬다.
세계 최대 뉴스통신사인 AP의 송고망을 타고 전 세계에 뿌려진 이 사진은 당시 공화당 지지층이 결집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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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화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