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예능 프로그램 '우리들의 발라드'를 즐겨본다. 김광석의 '그날들'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 같은 곡을 평균 나이 18세 아이들이 새롭게 부를 때마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한 세대의 기억을 다음 세대가 자기 것으로 되살리는 과정 자체가 아름답고, 진한 감동을 준다. 이 프로그램이 이토록 화제인 이유는, 세대 갈등을 겪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이런 교감을 그리워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젊은 참가자들은 단순히 명곡을 재현하지 않는다. 그 시절의 정서를 오늘의 감성으로 다시 번역하고, 자기만의 이야기를 덧입힌다. 기교보다 앞선 진심 어린 곡 해석이 깊이 와닿는다. 과거의 낯익은 선율이 오늘의 낯선 목소리로 되살아나는 순간, 세대의 간극이 메워지고 감정은 공명한다. 찐한 세대 교감의 순간이고, 재해석이 가진 힘이다.
과학사에도 비슷한 순간이 있다. 1928년 플레밍은 페니실린을 우연히 발견했지만, 임상적 가능성이 낮게 평가돼 실험실 소독제로만 사용됐었다. 10년 뒤 플로리와 체인이 이를 재해석하며 정제·배양 기술을 개선했고, 1940년 임상시험에 성공하며 항생제 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한 세대의 관찰이 다음 세대의 재해석과 실행으로 이어져 수백만 생명을 구한 사례다. 중력파 역시 1916년 아인슈타인이 예측했지만 당시에는 관측이 불가능했다. 이후 네 세대의 과학자가 연구와 기술을 발전시켜 2015년에야 검출에 성공했다. 예측에서 실험까지 100년, 세대를 넘나든 협업의 결실이었다.
이런 선순환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원격근무가 확산되면서 연구실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지던 지식 전수가 줄었고, 경험과 감각으로 쌓인 암묵지가 단절되고 있다. 젊은 연구자들은 선배보다 인공지능(AI)에게 더 자주 묻는다. 사실 각 세대가 서로를 돌볼 여력이 없다. 20·30대 젊은 연구자는 에너지와 창의성이 넘치지만 연구 기회를 얻기 어렵고, 40·50대는 행정 업무에 묶여 연구에 몰입하기 힘들다. 60대에 경험과 통찰이 무르익을 즈음에는 제도적으로 물러나야 한다. 각 세대가 가장 빛날 시기에 기회를 잃으며 서로 단절되는 구조다.
연구는 세대의 공존 속에서 진화한다. 연령 다양성이 클수록 혁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최근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2025년 한 국제 학술지 연구는 영국 대학의 연령대 다양성이 높을수록 발명 신고와 특허 출원 건수가 유의미하게 늘었다고 보고했다. 반대로 연령 구조가 한 쪽으로 치우친 조직에서는 발명 성과가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이런 연구는 경험의 깊이와 신선한 시각이 만날 때 혁신이 촉진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는 은퇴 과학자들이 젊은 연구자를 멘토링하는 제도를 운영한다. 일본 일부 대학은 역멘토링을 도입해 젊은 연구자가 신기술을 가르치고 고경력 연구자는 문제 설정과 맥락을 제공한다. 경험과 창의가 만나는 장을 의도적으로 설계하는 사례다.
우리도 세대가 공존하고 경험이 전승되는 연구 생태계를 설계해야 한다. 젊은 연구자와 경력단절 여성 과학자에게 초기 연구비를 지원하는 마중물 과제를 확대하고, 중견 연구자의 행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연구지원·관리 인력(스태프 사이언티스트)을 늘려야 한다. 은퇴 과학자들은 멘토링 펠로나 자문위원으로 참여하여 젊은 세대에게 경험을 전승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특히 시니어 과학자의 역량 활용은 시급하다. 오늘날 60대는 과거 세대와 달리 건강하고 왕성한 지적 활동이 가능하다. 수십년간 축적된 연구 감각, 실패를 통해 얻은 통찰, 학문 간 연결을 보는 안목은 단기간에 형성되기 어려운 국가적 자산이다. 이들이 제도적 은퇴와 함께 현장에서 사라지는 건 개인의 손실을 넘어 사회 전체의 지적 자본을 낭비하는 일이다. 실제로 OECD 2020년 보고서는 다세대 인력을 구축하고 고령 근로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면 향후 30년간 1인당 GDP가 19% 증가할 수 있다고 추산하기도 했다.
'우리들의 발라드'가 보여준 것은 단순한 리메이크의 감동이 아니다. 한 세대의 감성을 다음 세대가 이어 부르며 시대를 새롭게 해석하는 힘, 그 속에서 발견되는 연속성과 공존의 가치다. AI가 수백편의 논문을 학습하더라도, 세대간 대화 속에서 피어나는 창조적 재해석은 대체하기 어렵다. 과학도, 사회도, 결국 이 같은 '재해석의 리듬'을 되찾을 때다.
문애리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이사장 areemoon@wise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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