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과 5월에 가장 많이 방문한 곳은 진주다. 도서관과 북카페에서 강연이 있어 서울역에서 3시간30분 거리에 있는 진주역을 여러 차례 오갔다. 처음에는 KTX치고도 제법 오래 걸리는 역이라는 정도의 감흥밖에는 없었으나, 세 번째쯤 갈 때는 친밀감이 느껴졌다. 진주가 김장하 선생이 한약방을 운영하던 곳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뒤에는 더욱 그랬다. 다른 많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를 충격을 안고 봤던 터라 이곳이 그곳이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감회가 느껴졌던 것이다.

김장하 장학생 김종명씨가 김장하 선생에게 장학금을 받고도 특별한 인물이 되지 못해 죄송하다고 하자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다”고 답했다던 일화는 유명하다. 이 일화는 김장하 선생 취재기를 담은 『줬으면 그만이지』(2023)에도 등장하는데, 이를 소개하면서 김주완 기자는 김장하 장학금의 중요한 특징으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를 꼽는다. 그렇게 많은 돈을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기꺼이 내어주면서 어떻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하다못해 자신이 이 사회에 기여했다는 보람이라도 느껴야 하지 않는가.
조건 없이 내어주는 일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2025)에서 철학연구자 지카우치 유타는 사회를 움직이는 증여의 특징을 정리한다. 발신인이 드러나지 않을 것, 수취인이 오랜 시간 후에 깨달을 것, 그리고 수취인이 다시금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증여할 것.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어떤 생색도 내지 않은 채 기꺼이 뭔가를 건네는 일이 세계를 지탱하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김장하 선생을 보며 이 내용을 떠올린다. 그는 돈을 내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기꺼이 내어주는 어른의 삶’ 자체를 증여했다. 그 사실이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남아 또 다른 증여를 위한 이정표가 되지 않을까.
김겨울 작가·북 유튜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