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주보기] 영화를 살아있게 하는 문화실천, 책

2025-08-04

상영되지 않는 영화는 무덤 속에 있는 유물과 다를바 없다. 시대의 변화는 양면이 있기 마련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의 영화를 되살린건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의 발전 때문이다. 극장 문화의 퇴보를 가져왔다고 평가되는 동시에 관람객에게 다양한 영화에 상시로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역사 속에서 문화향유의 폭과 접근성을 높이는데 일조한 매체들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갱신되었지만 가장 오래도록 본연의 힘을 잃지 않는 것은 단연 ‘책’이다. 심지어 이 책과 글이라는 영역은 타예술 장르의 보존과 지식전달을 넘어 시대에 반응하는 새로운 가치 생산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 초까지 ‘영화문고 - 영화출판과 읽기의 연대기, 1980년 이후’ 전시를 개최하고 동명의 책을 출판했다. 이 기획은 20세기 말부터 현재까지 대중문화의 지형에서 급부상한 영화문화의 변천을 99권의 책을 통해 소개한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출판한 『영화는 무엇이 될 것인가? - 영화의 미래를 상상하는 62인의 생각들』도 99번째 책으로 선정됐다. 그런데 왜 영화를 책을 통해 소개한 것일까? 편집진은 ‘영화책은 문화적 실천의 한 지류다’고 답한다. 시대적 맥락에 따라 영화를 해석하는 비평가의 작업에 더해, 대중의 호응에 답하기 위한 출판이 실행된다는 지점에서 영화책을 팬덤이 행하는 능동적인 문화 창조의 일환으로 본 것이다.

대부분의 예술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이고 비평은 그에 따른 부속물처럼 취급되는 반면, 신기하게도 영화의 역사에서 어떤 글들은 영화보다도 더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작품 홍보에 도움이 된 명사들은 있었지만 앙드레 바쟁, 세르주 다네 등 비평가의 글이 제작에 영향을 끼쳐 영화라는 예술 자체를 발전시킨 예시를 다른 장르에서 찾기는 쉽지 않다. 문학은 비평이 ‘글’이라는 동일한 도구를 가지고 있기에 예외로 둬야겠지만, 예술의 형식과 비평이 다른 도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선상에서 주목받고 논의될 수 있는 건 영화 분야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처럼 영화와 글은 서로 다른 도구를 바탕으로 하지만 강력한 연결성을 지니고 있다. 최근 출판사들이 시대를 막론하고 양질의 영화 역사, 미학 분석, 영화인들의 말을 선정해 출간하고 있다. 전설적인 고전 『물질적 유령: 이론과 비평의 경계를 넘어』 (질베르토 페레스), 『영화작가들과의 대화』 (요나스 메카스)부터 최신 흐름을 반영하는 『미장센과 영화 스타일』 (에이드리언 마틴), 『대양의 느낌: 영화와 바다』 (에리카 발솜)까지 영화에 관한 책이 예전보다 활발히 만들어지고 있다. 비평이 죽었다는 통곡에도 영화책이 다양해지는 현상은 종합예술인 영화를 통해 인문정신을 발굴하고자 하는 대중의 새로운 욕구와 그에 대한 출판업계의 반응일 것이다.

영화와 관련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영화에 관한 정보를 얻고, 다른 사람의 해석을 듣으며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킨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세계확장의 궁극적 목적은 인간 삶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이다. 타인의 존재를 인식하고, 너그러운 사회를 형성하기 위해 서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사유하게 하는 것이다. 영화를 살아있고 존재하게 하는 것, 독자에게서 새로운 이야기와 문화현상이 발현되도록 하는 것이 영화책이다.

문성경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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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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