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승혜의 K판타지아] APEC 성공 이후, 문화외교 3.0으로

2025-10-31

“전쟁은 인간의 마음에서 시작되므로, 평화를 지키는 일도 인간의 마음에서 시작돼야 한다.” 유네스코 헌장의 첫 문장이다. 인류는 문화와 교육을 통해 평화를 세워야 한다는 이 약속을 지금 다시 새기고 있다. 이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로 한국의 문화 외교는 골든타임을 맞았다. 이제는 국가 이미지를 알리는 ‘문화 홍보 1.0’, 콘텐츠 산업 중심의 ‘문화 산업 2.0’을 넘어 문명과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문화 외교 3.0’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문화 외교는 소프트파워로 전 세계의 마음을 사로잡아 국익과 평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일이다. K소프트파워는 감정의 힘에서 비롯된다. 정이 많고 감정이 깊은 한국인의 특성이 우리의 가장 큰 자산이다. 울다가 웃고, 웃다가 울며, 그 감정이 노래와 드라마 속에 스며들었다. 한때 “정이 많다”는 말이 촌스럽게 들렸지만 이제 그 감성이 세계인의 공감을 이끌고 있다.

필자는 오랫동안 한국 미학의 본질을 탐구해왔다. 아직 아름다움을 정의하기도 전에 K컬처는 이미 세계의 사랑을 받았다. 어느 날 꿈속에서 “All that is called is love(불리는 모든 것은 사랑이다)”라는 목소리를 들었다. 그 문장은 필자가 지닌 예술관의 중심이 됐다. 예술가는 세상의 불완전함 속에서도 사랑할 이유를 찾고 고통을 아름다움으로 바꾸는 존재다. 이런 한국의 세계관이 지금 세계의 감성을 움직이고 있다.

지금 세계는 디지털 주권과 문화 접근권을 둘러싼 새로운 규범 경쟁에 돌입했다. 유네스코는 ‘다이브 인투 헤리티지(Dive into Heritage)’ 플랫폼을 통해 3차원(3D)과 가상현실(VR)로 세계유산을 체험하게 했고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의 저작권과 윤리를 국제 의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AI 윤리, 디지털 유산, 예술교육은 문화의 새로운 표준을 결정짓는 전환점이 되고 있다.

한국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 K컬처의 감정 파워를 기반으로 세계의 소녀들과 감정으로 연결된 한국은 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새로운 예술교육 모델로 재도약할 수 있다. 또한 AI를 활용해 개발도상국이 자신들의 기록유산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할 수 있도록 돕는 역량 강화 사업을 추진하고 싶다. 누구나 뜻을 펼치고 풍부한 감정의 기억을 남기는 일, 그것이 바로 K소프트파워의 문화 외교다.

특히 유럽연합(EU)이 구축 중인 ‘공동 데이터 스페이스’와 협력하면 우리의 문화유산 데이터를 세계와 연결할 수 있다. 서로 다른 플랫폼이 호환돼야 데이터를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다. 전 세계와 호환 가능한 데이터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K컬처가 연결해낸 전 세계의 소녀들의 감정을 기반으로 디지털 표준을 제시한다면 지금까지 미처 주목해보지 못했던, 그래서 새롭고 소중한 감정들이 데이터로 기록되면서 세계가 함께 기억하는 ‘디지털 감정 문화유산’이 구축될 것이다.

AI 시대의 문화 외교는 기술이 아니라 감정으로 완성된다. 감정은 제 뜻을 펼치는 힘이며, 사랑의 스펙트럼이다. 문화의 금관이란 빛을 나누는 일이다. 지금이야말로 한국이 그 빛으로 인류의 기억을 이어갈 리더십을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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