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성의 역습
하비 화이트하우스 지음
강주헌 옮김
위즈덤하우스 | 488쪽 | 2만7000원

옥스퍼드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하비 화이트하우스가 쓴 <인간 본성의 역습>은 인간 본성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유사 이래 인류 문명의 발전 과정을 설명하고 향후 문명이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제시하는 담대한 시도다. 40년간의 현장 연구와 데이터 축적·분석 작업을 바탕으로 한, 저자의 첫 대중서다.
인류는 오랜 생물학적·문화적 진화 과정에서 ‘순응주의’ ‘종교성’ ‘부족주의’라는 세 가지 본성(저자의 표현으로는 ‘편향’)을 물려받았다.
순응주의는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무작정 모방하는 성향”이다. 우리가 공동체나 국가의 관습과 의례를 별다른 의심 없이 수용하는 것은 순응주의적 본성 때문이다. 종교성은 “신과 혼령, 조상에 대한 관념을 습득하고 전파하는 성향”을 가리킨다. 부족주의는 “호화로운 잔치를 벌이거나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등 소속집단에 대한 열정적 충성심”과 외부 집단에 대한 공격성으로 나타난다.
진화 과정에서 얻게 된 본성
순응주의·종교성·부족주의
개인 간 ‘사회적 접착제’역할
문명 규모 확대되면서‘한계’
인간 넘어 전 생명체 포괄
‘세계 부족’인식 전환 촉구
저자에 따르면 문명이라는 거대한 건축은 이 세 가지 본성을 재료로 만든 벽돌을 쌓아올려 구축됐다. 따라서 인류의 역사가 왜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전개됐는지를 이해하려면, 이 세 가지 본성이 지난 수천년 동안 문화적 진화에 끼친 영향을 이해해야 한다.

순응주의, 종교성, 부족주의는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개별 인간들 사이에서 상호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일종의 사회적 접착제 구실을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순응주의 본능은 어떤 문제의 해법을 찾으려는 실용적 목적보다는 집단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마음, 달리 말해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배척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인간은 순응주의적 본성을 통해 집단의 의례를 내면화하고 소속감을 형성한다. 집단 내 구성원들이 공동의 의례를 통해 결속하면서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이것이 농경과 결합하면서 초기 문명이 탄생했다.
초자연적인 것에 지배적 권위를 부여하는 종교성은 중앙집권적 위계 사회를 탄생시킨 동력이다. 초기 사회에서는 힘 있는 자(빅맨)가 사망하면 그가 갖고 있던 권력도 함께 사라졌다. 하지만 일부 빅맨들은 자신이 강력한 정령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면서 권력이나 계급의 상속을 정당화했다. 세습에 성공한 리더와 그의 후손들은 이를 통해 막대한 부와 권력을 쥘 수 있었다. “세습 리더십이라는 제도의 발명은 친족과 후손의 결속으로 형성된 집단 간의 세력 균형에 기초한 비교적 소규모이던 사회 체제로부터, 지배계급을 정점에 둔 계급화된 대규모 사회로 전환하는 기원이 되었다.”
권력자가 일반 구성원들에게 극단적인 형태의 불평등과 희생을 강요하는 수단이었던 종교는 ‘축의 시대(주요 종교와 사상이 출현한 기원전 약 800년 무렵부터 200년 무렵 사이의 시기)’를 거치면서 질적 전환을 겪는다. 세속과 인간에 대한 내세와 초월자의 우위를 설파하며 정의와 공정의 기치를 치켜들었던 “도덕적인 종교”가 출현한 것이다.
초기 종교가 도덕적인 종교로 진화한 것은 집단의 규모가 100만명을 넘어서며 “폭압적인 통제만으로 사회를 유지하기 불가능해지는 임계점”에 도달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제국 내 서로 다른 민족들을 하나로 묶어내기 위해 종교의 역할을 변화시켜야만 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신들이 처음으로 양심이라는 것을 함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명의 규모가 더욱 확대되면서 도덕화된 종교로 사회를 통합하는 데서도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도덕화된 종교가 사회의 분열은 막아주었으나 군사주의적 팽창에는 부적합했기 때문이다. 문명의 성장은 군사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저자가 수천년에 걸친 수백개 정치 체제를 분석한 결과, 군사적 팽창주의는 기술 발달을 자극해 문명의 진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요인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지속적인 전쟁에서 제국 내 여러 곳에서 징병한 군인들을 결속시킨 힘은 어디서 왔을까. 저자는 그 답을 부족주의에서 찾는다. 대규모 집단의 구성원들이 소속 집단(민족·국가)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것은 ‘확장 융합’ 때문이다. 이는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비슷한 시련을 겪은 사람들과 강력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면서 자신과 집단의 정체성을 동일시하는 메커니즘을 가리킨다.
저자는 기후변화나 약탈적 자본주의, 파멸적 전쟁의 위험 같은 거대한 문제들의 배후에 “순응주의, 종교성, 부족주의라는 해묵은 편향성이 자리 잡고 있다”면서 “당장이라도 더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이와 관련해 ‘세계 부족’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인류는 끊임없이 부족의 규모를 키워왔는데, “그 확장 과정의 마지막 종착지는 인간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를 포괄하는 부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현재 인류는 ‘테라 부족’, 즉 지금 지구에서 살아가는 수십억명이 우리 모두에게 악영향을 주는 문젯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마침내 하나로 단결하는 단계를 눈앞에 두고 있다. 물론 지금도 우리 자신을 국민 국가의 시민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이유는 사고하는 습관 때문이지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이 있기 때문은 아니다.”
책은 오랜 기간에 걸친 광범위한 연구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인간 본성과 문명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풀어나가는 스토리텔링의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군데군데 눈에 띄는 오탈자와 비문, 오역으로 짐작되는 대목들도 눈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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