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없는 티빌리시의 밤

2025-05-15

남캅카스의 진주라 불리는 조지아. 얼마 전 방문한 수도 티빌리시 중심가 루스타벨리(Rustaveli) 애브뉴 밤거리에서 무언가에 열중인 두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차량 통제가 이루어진 거리 한복판에서 각각 조지아 국기와 유럽연합(EU) 깃발을 몸에 감고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여인들은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밤마다 이곳에 모이고 있는 시민 무리 중 하나다. 조지아 국기와 EU 깃발은 이곳을 둘러싼 건물 앞에서도 나란히 펄럭이고, 건물 벽면 곳곳에는 ‘조지아는 유럽이다’라는 구호의 그래피티 낙서도 자주 보였다.

지난해 11월 조지아 정부가 EU 가입 협상 중단 선언을 발표한 후 시작된 시위가 6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시위대는 지난해 발휘된 ‘러시아식 언론 탄압법’에 대해서도 격렬한 반대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유사한 법안이 2012년 러시아에서 제정돼 시민단체와 독립 언론의 활동을 억압하는 데 악용돼 왔다. 지난해처럼 격렬한 시위는 아니지만 시민들은 일과를 마치고 이곳에 모여 국가의 미래, 자유와 정체성 수호를 기치로 한 조용한 외침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중심에 젊은 세대들이 있다는 것이다. 부모세대의 러시아어보다 영어를 선호하는 20~30대들이 앞장서며, 국제사회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들은 단지 법안 하나를 반대하기 위해 나서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이 분노하는 대상은, 조지아가 오랜 시간 쌓아온 민주주의와 유럽 지향의 방향성을 흔드는 정부에 반대하는 것이다. 시민들은 러시아의 그림자 아래로 다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위기감을 감지하고 있는 것이다.

4년째 이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며 극도로 경계하는 시민들의 우려와는 달리 조지아-러시아 무역은 활발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무역 활로가 막힌 러시아가 조지아를 통해 각종 물자를 조달하면서 티빌리시에서 러시아 국경으로 향하는 212? 길이의 조지아 군사 도로에는 끝없는 화물트럭 행렬이 들어섰다. 조지아의 러시아 무역 의존도는 10%를 넘어 2024년에 25억 달러를 기록했다.

그야말로 복잡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 서방의 가치와 정체성을 추구하는 동시에 경제적인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조지아로서는 러시아로의 회귀 또는 EU를 향한 발걸음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구 400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이 작은 나라의 시민들이 조금씩 내고 있는 목소리를 들어 보면 그 방향은 분명하다.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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