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노벨상 무조건 반갑다” 그럼에도 이문열이 우려한 것

2024-10-13

이문열, 시대를 쓰다

내 소설은 다른 어떤 작가의 작품 못지않게 연극이나 영화로 많이 만들어졌다. 오늘은 그 얘기를 좀 해볼 참이다. 그 전에 후배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소설이 1990년대 초반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과 미국에 본격적으로 소개되던 때부터 나는 노벨문학상 수상을 한 나라의 국민문학이 비로소 세계문학 체제로 편입되는 잣대로 봐도 좋다는 생각이었다. 한강 작가와는 큰 인연이 없었고, 작품도 읽어본 게 별로 없지만, 그런 점에서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무조건 반가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늘어날 것이다. 다만 한강의 소설도 결국 우리 문학의 여러 방향 중 하나일 텐데 노벨상이라는 껍데기에 시야가 가려 그쪽으로만 가버리면 망하는 거고, 이걸로 한 봉우리 넘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 다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을 것이다. 그럴 때 굉장한 득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한강 소설은 꼭 그런 것 같지 않던데, 나는 소설은 묘사나 분위기 혹은 캐릭터뿐 아니라 서사 구조 또한 선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작품이 여러 차례 연극이나 영화로 만들어졌던 것은 그래서였을 것이다.

1981년(개봉년 기준) 유현목 감독의 ‘사람의 아들’부터 단편 ‘익명의 섬’을 각색한 임권택 감독의 83년 ‘안개마을’, 92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까지, 모두 7편의 장편소설과 중·단편소설이 영화화됐다. 90년대 초반에는 ‘영화계에 이문열 증후군’이라는 제목의 일간지 기사가 날 정도였다. 그만큼 여러 작품이 한꺼번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TV 드라마나 연극으로 만들어진 작품도 적지 않은데, 중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연극으로 만들어져 10년 넘게 롱런하며 수십만 관객을 동원했다. 장편 『사람의 아들』은 영화뿐 아니라 TV 드라마로도 두 차례나 만들어졌다. 나중에는 뮤지컬에도 손대 ‘명성황후’의 대본이 된 희곡 ‘여우사냥’을 쓰기도 했다.

소설도 그렇지만 영화나 연극은 물론이고 어떤 경우에는 음악까지 서사 구조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소설의 서사 구조가 강하면 다른 예술 장르로의 전환이 용이하다. 그렇기 때문에 서사 구조를 공급하는 ‘숨어 있는 신’으로서 문학의 권능은 언제까지나 변치 않으리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리스 시대에 영화(榮華)를 누렸던 연극이 소설과 영화에 밀려 한때 크게 위축됐지만 사라지지 않은 것처럼 성급한 문학 소멸론이나 비관론 역시 찬성할 수 없었다.

내 소설 원작 영화 제대로 본 적 없어

영화는 극장을 찾을 시간을 내기 어려울 정도로 바빠서 그렇지 꽤나 좋아하는 편이었다. 평소 보고 싶은 영화를 메모해 뒀다가 한꺼번에 10여 편씩 비디오를 빌려 몰아 보곤 했다. 91년 말에는 청룡영화상 심사위원을 맡은 적도 있다.

하지만 내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제대로 본 게 별로 없었을 정도다. 아무래도 복잡할 수밖에 없는 소설의 결을 영화에서는 거칠게 생략하게 되는데 그것이 세련되게 이뤄지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내 뜻은 사라지고 만다는 생각에서였다. 영화가 마음에 안 들어 괜히 사이좋았던 감독과 헤어질 수 있겠나 싶었다.

‘거장’ 임권택 감독이 연출한 ‘안개마을’도 그런 점에서 아쉬운 영화였다. 원작 ‘익명의 섬’은 마을 주민 대부분이 친인척으로 이뤄져 비밀 하나 없이 속속들이 기명화(記名化)된 동족부락(同族部落)에서 ‘깨철’이라는 문제적 인물이 마치 익명(匿名)의 섬처럼 은밀하게 혹은 모두의 묵인하에 마을 아낙네들의 억제된 성(性) 욕구를 해결해 준다는 내용이다. 한국계 미국 작가 하인즈 인수 펭클이 ‘An anonymous island(익명의 섬)’라는 제목으로 번역한 소설 전문(全文)이 2011년 미국인들의 문화적 자존심이라는 시사 문예지 ‘뉴요커(The New Yorker)’에 게재되기도 했다.

임 감독은 소설에서의 ‘익명성’을 크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았다. 제작사인 화천영화사는 이례적으로 대학생과 주부 등을 설문조사해 가장 표가 많이 나온 안성기와 정윤희를 남녀 주인공으로 캐스팅했는데, 원작에는 나오지 않는 술집 작부 산월이를 등장시키다 보니 영화 곳곳에서 성애(性愛) 묘사 장면이 불필요하게 많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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