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물이자 기록물…SK '선경실록' 故최종현 선대회장 육성 들어보니

2025-04-11

SK, 故최종현 선대회장 육성녹음 등 13만여점 디지털로 전환

"대통령한테 비자금 빌려다가 증권사를 사? 누가 보더라도 말 안돼"

사돈인 고 노태우 대통령과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음성도 담겨

"특혜는 무슨, 받을 게 없어"…최태원-노소영 이혼 소송 판결과도 정면 배치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기억은 기록을 이기지 못한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흐르면 사람의 기억은 희미해지지만, 기록은 영원하다. 그래서 정보가 넘칠수록 기억을 기록하고 그 자료를 보존해야만 뒷날 크게 쓸 수 있다. 기록만이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고 최종현 SK 선대회장의 생전 경영철학을 담은 이른바 '선경(SK그룹 전신) 실록'이 최 선대회장의 유고 27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SK는 그룹 수장고 등에 보관해 온 최 선대회장의 경영 활동 관련 자료를 발굴해 디지털 자료로 변환한 '자료전산화' 프로젝트를 지난달 말 완료해 최근 그 일부를 공개했다.

이번에 복원한 자료는 오디오와 비디오 약 5300건, 문서 3500여 건, 사진 4800여 건 등 총 13만1647점이다.

카세트테이프, 플로피디스크 등 기록 매체 사업을 했던 SK답게 1970~1990년대 최 선대회장이 임직원과 가졌던 각종 회의, 중요 의사 결정 순간에 벌인 토론과 판단, 그룹 총수들과의 대화 등이 고스란히 담겼다.

지난 1992년 선경그룹이 태평양증권(현 SK증권)을 인수할 때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활용됐다는 주장을 반박한 녹음도 그중 하나다.

과거 최 선대회장은 개인 자격으로 1991년 12월 태평양증권의 보통주 283만주를 총 571억 6600만원에 양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는데, 최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에서 여기에 노 관장 측이 선친인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300억원 규모)이 쓰였다고 주장해 논란이 됐다.

하지만 1995년 당시 최 선대회장은 "증권회사를 하면서 돈이 없어서 어디 가서 대통령한테 돈을 빌려다가 그거를 했겠느냐 내가. 그런 돈은 우리가 얼마든지 움직인단 말이야"라고 설명했다.

지난 1994년 한국이동통신을 시가보다 비싸게 인수했는데, 그보다 규모가 작은 증권사 인수에 돈을 왜 빌리겠냐는 것이다.

그는 더욱 직설적인 화법으로 "무슨, 내가 돈이 없어서 말이야. 4300억씩 일시불을 하고서 제2 이동통신을 사는데 무슨 증권회사의 뭐 저기를 사는데 사돈한테 비자금을 빌려다가 내가 산 거 마냥. 누가 보더라도 이게 말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이는 '300억원이 최 선대회장의 태평양증권 인수를 비롯해 선경기업 경영에 사용됐을 것'이라 한 항소심 판단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SK의 한국이동통신 인수 과정도 최 선대회장의 목소리를 통해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우리 그룹 전체를 생각하면 캐시 플로우가 8000억, 1조가 되니까 몇 달 죽어라 하고 또 열심히 벌면 그 돈은 뭐 이제 우리가 벌 수 있는 거고. 그런데 사람이 병나면 그건 큰일 나는 거 아니냐. 2천몇억 그냥 정부에 더 줬다 이렇게 하니까 속은 내가 편하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노태우) 정부에서 뭘, 무슨 특혜를 받니? 받을 게 없어"라고 불쾌해했다.

실제 최 선대회장은 노태우 정부 임기 마지막 해인 1992년 '제2 이동통신사업자 선정'에 입찰해 1위로 선정됐지만,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김영삼 민주자유당 대표가 특혜 의혹을 제기하자 사업권을 자진 포기하고 노 정권에선 통신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대신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4년 제1 이동통신사였던 공기업 한국이동통신이 공개입찰로 나오자 지분 23%를 4271억원에 인수했다. 제2 이동통신사업권을 따는 것보다 많은 비용이 들었지만 그대로 추진했다. 이렇게 탄생한 SK텔레콤은 지금까지 국내 1위 통신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밖에도 세계 경제 위기를 몰고 온 1970년대 1, 2차 석유파동 당시 정부의 요청에 따라 최 선대회장이 중동의 고위 관계자를 만나 석유 공급에 대한 담판을 짓는 내용, 1992년 정당하게 획득한 이동통신사업권을 반납할 때 좌절하는 구성원들을 격려하는 상황 등이 음성 녹취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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