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KT이사회는 지난해 구현모 전 KT 대표의 사임을 비롯한 경영 정상화 과정에서 새 사외이사진을 꾸렸다. 주주들에게 추천을 받았고 사내이사의 영향력도 줄였다. 차기 대표 후보와 사외이사 후보가 줄줄이 사퇴하는 파행을 겪던 KT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내놓은 특단의 조치였다. 이는 정권 외압 논란을 끊어내고 지배구조 측면에서 신뢰를 다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도 기대됐는데, 최근 다시 정치권의 주목을 받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뜻하지 않게 KT 최대주주에 올랐기 때문.
KT 이사회에는 현대차그룹 추천 인사가 포함돼 있다. 비자발적 최대주주 변경이라는 점에서 이 같은 우려를 ‘해프닝’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앞으로도 현대차그룹이 KT 경영에 참여하지 못하게 보장하는 장치는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사회에 현대차 측 2인, 우회적인 경영 참여 가능할까
KT 사외이사 8명 중 2명은 현대차그룹의 추천 인사로 확인됐다. 앞서 현대차 측 인사로 알려졌던 곽우영 전 현대차 차량 IT개발센터장(부사장) 외에도 조승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가 지난해 6월 이사회 구성 당시 현대차의 후보 추천을 받아 KT 이사회에 합류했다. 곽 전 센터장은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통신, 단말 분야 경력이 있고, 조 교수는 삼성SDS 사외이사(감사위원), 애큐온캐피탈 사외이사 등을 거쳐 현재 현대제철 사외이사와 KT 사외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이들은 KT가 ‘주주 추천’ 방식으로 선임한 첫 이사회 구성원이다. 오너가 없는 소유분산기업 KT에서는 대표 연임 및 교체 결정 시기마다 국민연금과 이사회, 대표이사의 갈등이 반복됐다. 지난해 상반기에도 대표 선임을 두고 수개월간 여권과 갈등을 빚었다. 이에 KT는 국민연금, 현대차, 신한은행 등 3대 주주의 의사를 반영해 사외이사를 구성하고 사내이사 ‘힘 빼기’를 골자로 하는 정관 변경도 단행했다. 주주 중심 경영과 지배구조 개선이 취지였다.
하지만 최근 정치권에서는 현대차 1대 주주 변경과 맞물린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거세다. KT 최대주주가 된 현대차가 앞서 선임된 사외이사를 통해 우회적으로 경영 참여에 나설 수 있다는 것.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5일 종합감사에서 김영섭 KT 대표에게 “현대차가 경영에 개입하지 않으려면 이들이 사외이사로 활동하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질문했다. 두 사외이사의 배제나 별도의 활동 제한 등의 조치가 없다면 경영 참여는 현대차 의지에 달려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경영 참여 이미 시작되었나
김 대표는 “실제 사업 목표를 설정하거나 포트폴리오 구축, 조직 신설이나 보직 배치 등 일상의 경영에 사외이사가 관여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평가다. 김 대표의 말처럼 일반 사업 영역은 사외이사들이 직접 개입하는 분야가 아니다. KT 기업지배구조 보고서 공시에 따르면 곽 전 센터장은 KT 이사회 내 지배구조위원회, 내부거래위원회, 지속가능경영위원회에서 활동한다. 조 교수는 감사위원회, 평가 및 보상위원회에 참여한다. 두 사람을 포함한 사외이사 8명은 모두 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 속한다.
다만 상정된 안건을 수정, 보완해 최종 결정을 하는 건 이사회다. 대표이사는 이사회 결정을 위임받아 실행하는 자리다. 최근 KT의 본사 네크워크 분야 자회사화와 전체 인력의 23%에 대한 구조조정도 이사회 의결로 진행됐다.
대표 선임과정에서 입김도 세다. KT 대표이사는 사외이사가 뽑는다. 정관 변경으로 KT 사외이사의 권한은 전보다 커졌는데, 사외이사들로만 구성된 KT 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대표이사 후보를 찾고 심사해서 최종 후보자를 결정한다. 사외이사 추천을 위한 위원회 구성도 사내이사 없이 전원 사외이사로 가능하다. 실제로 지난해 현대차는 구 전 대표 후임으로 KT·현대차 출신 윤경림 내정자에 대해 대외적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KT 임원 출신 한영도 상명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이사회 3분의 1을 차지하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사외이사 8명 중 2명이면 비중이 25%인데, 소유분산기업인 KT의 경우 8%대의 지분으로도 지배력을 행사하기에 충분하고 사외이사의 영향력도 더욱 크다. 현대차가 뒤에 있는 사외이사의 메시지는 그 무게부터 다르다”며 “지분교환 형태는 경영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받겠다는 의미인데 현대차와 KT가 모빌리티, 자율주행, UAM 등에서 긴밀한 협력을 본격화하는 데다 최대주주까지 된 상황에서 ‘경영 참여를 안 한다’는 건 이율배반적”이라고 지적했다.
현대차그룹이 보유한 KT 지분은 8.07%다. 현대차가 4.86%, 현대모비스가 3.21%를 나눠 가졌다. 올해 3월 말 기존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KT 주식을 처분하면서 순위가 뒤바뀌었다. 지분을 취득한 계기는 2022년 9월 실시한 지분 맞교환이었다. 상호 주주가 되는 혈맹을 통해 통신과 미래 모빌리티 영역에서 시너지를 낸다는 취지였는데 당시 양 사는 투자 목적을 경영 참여가 아닌 일반 투자로 명시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현대차가 기간통신사업자인 KT 최대주주로 적격하다고 판단했다. 주식 보유 목적이 단순 투자 목적이고 경영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현대차 의사를 받아들였다. 최대주주가 바뀔 때마다 공익성 심사를 받아야 하는 절차에 따른 것인데 1회 서면 형태로 결론이 나면서 졸속 심사 의혹도 제기됐다.
현대차가 KT에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을 국회가 견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기업으로 시작한 KT는 2002년 민영화됐지만 사실상 ‘주인 없는 공기업’으로 불린다. 특정 재벌에 특혜를 주지 않고 ‘국민기업’으로 남겠다는 취지다. 한 교수는 “산간, 벽지, 도서, 농어촌, 섬마을에 전국적으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건 KT가 유일하다. 전국의 네트워크 인프라를 KT가 담당하고 있는데 유지, 관리에 큰 비용이 들어가 효율성은 떨어진다. 특정 민간 기업의 지배력이 커지면 이 같은 공적 책무가 간과되기 쉬운데 과기정통부가 근시안적인 판단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이제라도 현대차 측 사외이사의 사임이나 지분 축소 혹은 추가 확보 제한 등의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KT는 최대주주 변경에 따른 영향 분석 보고서는 작성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에서도 이 같은 지적이 나오자 김 대표는 “규정상 이사회 선임과 관련해 경영진이 관여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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