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일 이어지는 폭염에 농산물 작황이 나빠져 밥상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5일 통계청에 따르면 7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2.1% 올랐다. 채소·과일 값은 장보기가 두려울 정도로 급등했다. 시금치는 한 달 새 78.4%, 수박은 20.7% 뛰었다. 고등어(12.6%) 등 수산물 가격도 심상치 않다. 한반도 주변의 고수온 현상으로 어종 변화와 생육 부진이 겹쳐 수산물이 덜 잡힌 영향으로 보인다. 정부가 집중 관리해온 가공식품 물가는 4%대 상승률이 이어졌지만, 할인 행사 등 영향으로 상승폭이 다소 둔화된 게 그나마 다행이다.
물가 상승은 가뜩이나 움츠러든 소비를 더욱 위축시킬 공산이 크다. 그 타격은 저소득층 가계일수록 더 크게 받고, 골목시장과 자영업자에게로까지 여파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손님이 줄어 힘든 데다, 음식값을 올리기도 쉽지 않으니 수익 감소 부담까지 떠안아야 하는 것이다. 기후위기가 일으킨 폭염과 폭우가 실물경제를 흔드는 상시적 위협이 됐다는 걸 실감케 하는 악순환이다. 당국이 팍팍해진 서민들의 가계 부담을 실효적으로 덜어주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문제는 이상기후가 농축산물 생산을 교란하고 물가를 밀어올리는 ‘기후플레이션’(기후+인플레이션)이 해마다 일어나고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적 피해에 자연재해까지 불러오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여러 영역을 아우르는 국가적인 전략 마련이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이를 뒷받침할 정부의 기후 재정 인식은 안이하기만 하다. 현재 한국의 연간 기후위기 대응 예산은 12조원 정도다. 2023년 GDP(2401조원)의 0.5% 수준으로, 국제에너지기구(IEA)가 권고하는 5%(약 120조원)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환경부의 기후취약 계층·지역 지원 사업만 해도 95억원으로 증액된 뒤 3년째 제자리다. 예산을 늘려도 시원치 않을 마당에 퇴보·답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제대로 된 기후대응이 없을 시 2100년까지 GDP가 21% 감소하며, 매년 0.3%포인트씩 성장률이 떨어지는 구조적 저성장에 빠지게 된다고 경고했다. 극한 기후가 일상이 된 만큼 정부가 비상한 경각심을 갖고 대응 속도를 높여야 한다. 기후정책 기조를 ‘확장’으로 전환해 경기를 떠받치고 기후약자들을 보듬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언제까지 날씨 탓만 하고 있을 건가. 차제에 심화되는 기후위기를 상수로 놓고, 재정의 틀을 다시 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