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 요양사 한 명이 하루 30㎞ 돌며 20가구 돌보기도”

2025-12-05

초고령사회 1년…‘요양·돌봄 공백’ 심화

지난 3일 이른 새벽 경기도 시흥의 오래된 다세대 주택. 이정순(74)씨가 천천히 불을 밝혔다. 허리 통증 탓에 밤새 여덟 번도 넘게 깼다는 그는 무릎을 주무르며 “죽는 건 하나도 안 무서워요. 그런데… 요즘은 사는 게 무섭죠”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남편과 사별한 지 11년. 지방에 있는 외아들은 바쁘다는 이유로 연락이 뜸하다. 화장실에서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다는 그의 침대엔 비상벨 대신 오래된 휴대전화만 놓여 있었다. “늙고 병든 것도 서러운데, 앞으로 살아갈 날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는 게 더 두렵네요.”

이씨의 삶은 한국 고령층의 현재이자 가까운 미래다. 지난해 12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지 1년. 그사이 노인 요양·돌봄 체계가 급속히 와해되면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혼자 사는 노인’이 크게 고통받고 있다. 60세 이상 1인 가구는 어느새 300만 가구에 육박한다. 지난해 296만4000가구로 전년 대비 26만4000가구나 늘었다. 독거노인 기준인 65세 이상 1인 가구도 219만6738가구로 200만 가구를 훌쩍 넘어섰다. 하지만 가족 돌봄은 이미 빠르게 해체되고 있고 자녀가 있어도 함께 살지 않는 ‘고립형 노후’가 보편화되면서 홀로 늙어가는 노인들의 위험은 점점 커져만 가는 실정이다.

고독사도 증가세가 뚜렷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3년 고독사 중 60세 이상이 절반이 넘는 50.3%를 차지했다. 2019년 43.7%에서 5년 연속 상승했다. 독거노인의 고립이 한 개인의 ‘복지 사각지대’ 수준을 넘어 생명과 직결된 사회적 위험 요소로 급부상한 모습이다.

문제는 요양·돌봄 인프라가 이런 증가 속도를 좀처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건강보험연구원은 올해부터 요양보호사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기 시작해 2028년엔 최소 11만 명 이상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요양원, 재가 요양, 방문 돌봄, 야간 돌봄 등 모든 영역에서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지만 공급은 역부족인 게 현실이다. 서울 서초구에서 요양원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요양보호사 채용이 가장 큰 고민”이라며 “경력과 전문성이 있는 보호사가 꼭 필요한데 그런 인력을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졌다”고 토로했다.

서울과 수도권은 그나마 나은 편. 지방의 현실은 훨씬 심각하다. 요양시설이 폐업하거나 인력이 없어 환자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돌봄 공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충북의 한 재가노인돌봄센터 관계자는 “요양보호사가 부족하다 보니 한 명이 하루 30~40㎞를 이동하며 스무 가구를 돌보기도 한다”며 “이런 상황은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이러다 지방은 조만간 요양·돌봄 시스템 자체가 붕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수도권인 경기도 외곽의 한 요양원을 찾았을 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원은 60명인데 대기자만 수십 명이었고 복도엔 이동침대가 줄줄이 놓여 있었다. 요양보호사들은 식사에 세척·배설 관리까지 맡느라 정신없이 움직여야 했다. 15년 넘게 요양보호사로 일했다는 정모(57)씨는 “치매 환자나 와상 환자는 특히 손이 많이 가는데 한 사람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고 있다. 환자도 불안하고 보호자도 불안해하고 우리도 지쳐가고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한동희 노인생활과학연구소장은 “요양보호사들도 처우가 워낙 낮고 전문성에 대한 인정도 부족하다 보니 힘들게 일하면서도 보람을 찾지 못하는 구조”라며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그나마 있는 인력의 이탈마저 가속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노인층의 돌봄 욕구는 갈수록 커지는데 서비스 질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현장 곳곳에서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요양·돌봄 인프라의 한계는 치매 인구의 급속한 증가와 맞물리며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 집계 결과 올해 치매 환자는 97만 명으로 내년엔 100만 명 돌파가 확실시되고 있다. 치매 전 단계로 분류되는 경도인지장애(MCI) 노인도 300만 명에 달한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치매는 이미 가족과 지역사회·국가가 함께 감당해야 하는 가장 큰 부담 중 하나로 떠올랐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런 상황에선 치매 환자를 둔 가족의 고통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경기도 수원에서 치매 3기 노모(78)를 돌보는 최모(49)씨는 “밤새 집안을 돌아다니거나 갑자기 문을 열고 나가려 해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며 “몸도, 마음도 소진돼 내가 먼저 쓰러질까 두렵다”고 말했다. 그는 “요양병원에 모시고 싶어도 자리가 없고 대기만 몇 달”이라며 “집중력이 저하돼 회사 업무에도 큰 지장을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은 단순한 요양·돌봄 부족을 넘어 한국 사회 시스템 전반의 위험 신호라고 우려하고 있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의 요양병원과 간병 시스템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비정상 구조”라며 “요양병원은 원래 급성질환 치료 기관인데 만성질환자만 몰리고 이들을 보호자가 상주하며 간병하는 방식은 보건·인권 측면에서 지속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돌봄은 가족에게 전가할수록 사회적 비용이 커지는 영역”이라며 “특히 지방은 요양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돌봄 공백이 구조적으로 고착화되는 단계에 도달하면서 지자체 예산으론 해결할 수 없는 국가적 위기 상황이 가시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치매 문제까지 가족과 사회 모두를 압박하는 중층적 위기로 작용하고 있다. 한 소장은 “지역사회 기반의 재가 돌봄·쉼터·재활 지원이 시급히 확대되지 않으면 치매 가족의 붕괴가 커다란 사회 문제로 부상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독거노인 증가에 돌봄 인력 부족, 치매 환자 급증이 겹치며 요양·돌봄 시스템 균열이 가속화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언젠가 직면할 미래의 위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 위기’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현장에선 더 늦으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나라’에서 ‘가장 빨리 돌봄이 붕괴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잖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국가 책임 강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돌봄 인력 처우 개선 없인 인력난을 해소하기 힘들고, 현재 요양 체계로는 치매·고령층 증가 속도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임춘식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는 “요양서비스 표준임금제 도입과 공공 요양시설 확충, 이동·방문 돌봄 확대 등 국가가 직접 책임지는 영역을 빠르게 늘려야 할 때”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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