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드라이브

2025-03-02

여행을 자주 다니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불과 200㎞ 떨어진 이웃 도시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다는 사실을 끝내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었다. 왜였을까? 문장을 좀 더 또렷하게 고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으려나. 내가 사는 도시가 대구이고,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도시가 광주라는 사실이 그 감정의 원인이 될 수 있느냐는 말이다.

광주에서 본 장면들

지난달 소규모 독서 모임의 초청을 받아 광주에 갔다.

내비게이션에 숙소 이름을 입력하니 경로를 표시하는 녹색 선이 비교적 짧고 곧게 그어졌다. 분명 산도 넘고 강도 건널 텐데 왠지 가는 내내 평평한 길일 것만 같은 그래픽이었다. 두 도시를 잇는 유일한 고속도로에 진입해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하는 생경한 이동을 시작했다. 고령, 거창, 함양, 지리산, 남원, 순창, 담양. 지나치는 길목마다 평소에는 소리 내어 말할 기회가 없던 지명들이 나를 애틋하게 사로잡았다. 데칼코마니처럼 반을 접으면 출발지와 목적지의 좌표가 포개지는데, 나는 왜 이 지도를 내 것처럼 익히지 못했던 걸까.

헬기 사격으로 벽체에 남은 총탄의 개수를 건물 이름 뒤에 붙이기로 한 결정은 누가 한 것일까? 나는 옛 전남도청 앞 분수대에서 ‘전일빌딩245’로 걷는 짧은 길에 잠시 서서 5시18분이 되기를 기다렸다. 시계탑에서 흐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듣고 주위를 살피니 나처럼 어색하게 선 관광객 몇이 눈에 띄었다. 눈앞의 새하얀 건물이 우리 모두의 목적지였다.

건물의 전체적인 사진을 찍기 위해 뒤로 물러나던 중, 갑자기 길 건너편에서 애국가가 들렸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반대 집회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광주여 깨어나라’는 전광판 앞에서 사회자는 뒤이어 ‘5·18의 순수 민간인 피해자를 위한 묵념’을 진행했다. 이 빌딩 앞에서도 저런 말을 할 수 있구나. 놀랐지만 놀랄 수 없었다. 그날은 내가 떠나온 동네에서 탄핵을 반대하는 집회에 5만명의 인파가 모인 날이었다.

건물에 들어가자마자 본 것은 제주 여객기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였다. 사전에 알고 온 것이 아니었지만, 입장과 동시에 정해진 동선처럼 자연스럽게 국화꽃을 놓는 사람들을 따라 함께 묵념했다. 분향소 옆에서도 빌딩의 직원들은 각자 할 일로 분주했고, 추모를 마친 방문객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빌딩 곳곳에 있는 목적지로 흩어졌다. 마치 애도에 능숙한 사람들처럼.

전일빌딩은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기록이었지만, 그 내부마저 폭력과 항쟁의 역사로 가득 채워진 훌륭한 아카이브였다. 헬기 사격이 집중된 고층부 전체에 마련된 젊은 미술가들의 설치 작업은 기록의 방식에도 구태와 멀어지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했고, 한 층 전부가 5·18을 폄훼하는 주장과 ‘가짜뉴스’에 대한 반박으로 메워진 공간은 이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집요한 악의와 싸워왔는지를 직관적으로 깨닫게 했다.

다시 광주에 간다면

나는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광주를 여행하고 있다는 두 대학생과 느슨한 팀이 되어 건물을 감상한 뒤 함께 옥상에 올랐다. 무등산의 능선을 감상하기 좋다는 그 한적한 곳에서도 여전히 ‘광주여 깨어나라!’는 건물 밖의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숭고한 침묵으로 설계된 애도의 공간과 억압을 정당화하는 시끄러운 거리. ‘세상은 왜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우며, 동시에 아름다운가’라는 질문이 그 두 풍경의 괴리를 메우며 나를 위로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김아영 작가의 전시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를 보았을 때였다. 가상의 도시를 춤추듯이 질주하는 여성 배달 노동자 에른스트 모와 그의 대칭적 존재인 엔 스톰은 수직으로 설계된 세계의 가장 하층부에서 만나 자신들을 통제하는 수많은 ‘시간’에 저항하며 탈출을 시도한다. 두 사람은 서로 감시하고 협력하며 슬픈 싸움을 무한히 반복한다.

“많은 시간들이 사라졌고, 일부는 남아 있어. 사라진 시간들은 다 어디로 갔을 것 같아?” 짧은 일정 탓에 5·18국립묘지에 가지 못하고 귀가하는 길에 에른스트 모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사라진 시간, 아니 누군가로부터 삭제된 시간, 그리고 그것을 은폐하려는 시도에 맞서 사라진 시간을 기억하려는 이들이 있다. 진실한 시간을 되찾는 것이 중요한 수많은 에른스트 모들이.

몇 번이고 추락하면서도 다른 시간대의 나, 이 공간의 틈새를 기억하며 저항의 끈을 놓지 않는 라이더처럼 지리산 휴게소를 나와 산세를 끼고 완만한 커브를 돌았다. 한때 ‘88’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이 아름다운 도로는 몇 번이나 더 달려야 내게 그런 진실의 틈새를 내어줄까. 조만간 다시 또 올게. 도로에 인사를 남기자 비로소 여행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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