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가 품은 유전자가위 석학 “문제는 규제”

2025-02-17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유전자가위 연구의 세계적 석학 김진수(60) 전 서울대 교수를 품에 안았다. 김 교수는 3월부터 정교수 신분으로 KAIST 생명과학기술대학에서 연구 활동과 학생 지도를 하게 된다. 그는 국제학술지 네이처가 2018년 ‘동아시아 스타 과학자 10인’ 중 한 명으로 꼽은 학자로, 노벨화학상을 받은 ‘제3세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의 원천기술을 보유한 상장기업 툴젠의 창업자이기도 하다. 2005년 서울대가 김 교수를 영입하더니, 2014년엔 기초과학연구원(IBS)이 유전체교정연구단장으로 모셔갔다. 유전자가위는 최첨단 생명과학기술이면서, 이를 이용한 치료제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분야다. 2019년 이후 연평균 26.86% 성장해 2030년엔 108억 달러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BIS리서치).

3월부터 대전 KAIST에서 연구

그간 수사·재판으로 고통 겪어

“학생들과 인류 난제 해결할 것”

이 분야 세계적 석학으로 명성을 높이던 그는 2017년부터 특허권과 연구윤리 문제를 두고 감사와 송사에 얽혀 고난의 시간을 지내야 했다. 1심에선 무죄가 나왔지만, 2심에서 징역 1년형의 선고유예 판결을 받은 2022년 3월 IBS를 떠나야 했다. 그해 11월 말 대법원은 2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더이상 국내에서 연구 활동을 하기 어려워졌다. 선고유예 기간(최대 2년) 중엔 규정상 국내 대학이나 국가 연구기관에 취직할 수 없다. 선고유예 기간이 끝난 지난해 말 KAIST와 김 교수의 모교인 서울대가 영입전에 나섰고, 김 교수는 KAIST를 택했다. 중앙일보 취재진이 지난 12일 김 교수를 만났다.

KAIST에서 정년 없이 연구할 것

왜 서울대로 돌아가지 않고 대전 KAIST를 택했나.

“KAIST에서 1년 전부터 그간 내가 겪어온 문제들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표하시면서 대전으로 올 생각이 있느냐고 제안해왔다. 몇 달 후면 내 나이가 만으로 61세다. 대부분의 대학에선 60이 넘으면 (지도) 학생도 안 받고 정리하는 단계다. 하지만 KAIST는 정년후 교수 제도를 시행하고 있어 정년 후에도 연구비만 확보하면 나이와 관계없이 계속 일할 수 있다. 서울대에서도 오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가자마자 은퇴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고민 끝에 KAIST를 택했다.”

계획 중인 연구가 있나.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당찬 학생들과 함께 인류가 당면한 난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하고 싶다.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변이로 발생하는 다양한 불치병을 원천치료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기후위기 대응으로 식물의 광합성 효율을 높이는 방법을 연구하고자 한다. 엽록체에서 광합성이 일어나기 때문에 엽록체의 유전자를 교정하면 광합성 효율이 높아진 식물을 만들 수 있고 이를 이용해 탄소저감을 할 수 있다. 식량 증산에도 활용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지난해 말로 선고유예 기간이 끝나 면소가 됐다. 어떤 심정인가.

“법원의 최종 판단을 존중하지만, 아쉬운 점이 많다. 연구비 문제는 행정적으로 미숙함이 있었다. 그 정도로만 얘기하고 싶다.”

(당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서울대에서 발명한 수천억 원 가치의 크리스퍼 발명 특허를 헐값에 툴젠에 양도했다’는 혐의는 1·2·3심 모두 무죄로 판결 났다. 선고유예가 난 건 연구비와 IBS 특허 문제였다. 당시 2심 재판부는 “열악한 연구 환경 속에서도 미래 산업 발전을 위해 중요한 유전체 교정 기술 분야를 오랜 기간 연구해왔고, 피고인의 연구 능력과 학문적 기여 가능성 등을 참작해 달라는 탄원서를 피해 기관 등이 제출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그간 어떻게 지냈나.

“수사와 재판 초기 1년 동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재판 기간 땐 코로나19 팬데믹 기간까지 겹쳐 여러 가지 활동에 어려움이 많았다. 제자와 연구원들이 많이 이탈했지만. 그래도 소수의 인원이 남아 열심히 연구했고, 놀라운 일들을 해냈다. 다들 대학이나 기업·연구소로 잘 진출했다. 연구 성과도 좋아 국제학술지 셀과 네이처바이오텍·네이처커뮤니케이션 등에 여러 편의 논문이 실렸다. 스타트업도 2개 창업했다. 미토콘드리아 내 유전자를 교정해 관련 유전질환을 치료하는 엣진과 식물 엽록체 속 DNA를 교정하는 그린진이다. 둘 다 기존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로 할 수 없는 새로운 기술이다. 재판 기간 중이었지만, 싱가포르국립대의 제의로 초빙교수도 됐다.”

여전히 툴젠의 2대 주주이기도 한데, 관여하지 않나.

“그간 아무런 역할을 맡지 않고 있다가 지난해 말 주주총회에서 비상무 이사로 선임됐다. 경영진의 요청이 있었다.”

미국서 크리스퍼 특허소송 진행

툴젠이 유전자가위 특허 관련 미국 소송 중에 있지 않나.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선 발명자를 가리는 특허소송이 진행 중이다. 특허 선출원으로는 툴젠이 가장 빠르지만, 논문 게재로는 브로드연구소가 더 빠르다. 현재 미국에서 노벨상 수상자 그룹과 브로드연구소(MIT·하버드 합작)가 원천특허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결과가 나오면 승자하고 툴젠이 다시 다퉈봐야 한다. 지금은 준결승인 셈이다.”

툴젠은 지금 어떤 상황인가.

“안타깝지만 아직 치료제 개발을 위한 전임상 단계에 있다. 반면 미국에선 이미 적혈구 빈혈 유전병 치료제인 카스제비(Casgevy)처럼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신약이 시장에 나오고 있다. 미국은 투자 규모와 규제 수준 등에서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조건이다. 이미 상장된 툴젠보다 10년 이상 늦게 창업한 미국 경쟁사들이 비상장일 때부터 조 단위 투자를 받아 임상에 쏟아붓고 있다. 우리는 생명윤리법이 막고 있는 것도 있고, 또 법이 허용하더라도 그 관련 부처에서 다양한 이유를 들어 얼마든지 규제할 수 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특허분쟁에서 이기면 카스제비 같은 곳에서 거액의 로열티를 받을 수 있다.”

유전자가위 분야에서 해소돼야 할 대표적 규제를 꼽는다면.

“기술 수준은 해외 선진국과 대등하거나 앞서 있는 수준이다. 문제는 규제다.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DNA 교정은 외부 유전자를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내부 DNA를 교정하는 거다. 기존 육종은 긴 시간 돌연변이를 통해 내부 DNA가 바뀐 걸 이용하는 건데, 이것과 다를 게 없다. 일본·미국 등 해외 선진국에서는 이를 LMO(유전자변형생물체)로 규제하지 않고 있다. 덕분에 크리스퍼를 적용한 농수산물들이 이미 시장에 나오고 있다. 우리도 개정안이 마련돼 있지만,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그 사이에 경쟁국들은 뛰어가고 있다. 누구를 위한 규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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