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하 칼럼] 농업외교 ‘협상’에서 ‘협력’으로 나가야

2024-10-20

198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20년 이상 우리 농업 외교는 국내 시장을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춘 방어적 협상 전략에 의존해왔다. 우루과이라운드(UR)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굵직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농산물시장 개방 압력이 거셌고, 한국 농업은 생존을 위해 수입 제한,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해 국내 농가를 보호하는 정책을 펴왔다.

UR로 시작된 개방의 물결은 우리에게는 생소한 경험이었으며 농민들은 불안과 공포에 쌓여 개방에 저항했고 이로 인한 엄청난 사회적 갈등을 겪었다. 이처럼 우리 농업과 농정은 한동안 거센 홍역을 치렀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글로벌 농업환경은 변했다. 자유무역을 이끌어온 세계무역기구(WTO)가 선진국과 개도국의 대립 속에 갈팡질팡하면서 다자무역협상은 한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한·미 FTA를 기점으로 FTA 자체에 그 강도나 민감성이 많이 줄어들었다. 한마디로 이제 ‘협상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6년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특히 2010년 한국은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해 국제사회의 개발 협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개도국을 위한 공적개발원조(ODA)를 확대하고, 유엔(UN·국제연합)의 ‘지속가능개발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개도국과 협력하며, 재난이나 분쟁이 발생할 경우 인도적 지원을 확대하기로 약속했다. 바야흐로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큰 발걸음을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ODA 사업은 1991년에 시작돼 OECD 가입 당시만 해도 ODA 예산이 미미했다. 하지만 가입 이후 그 규모는 급증해 DAC에 가입하던 2010년에는 1조8000억원, 2025년에는 6조8000억원으로 빠르게 늘어났다. 많은 개도국들이 한국의 농업 기계화, 스마트농업을 비롯한 선진농업기술, 농촌지역의 자립과 공동체 발전을 성공적으로 이끈 농촌개발 경험을 배우려 하고 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국가 전체 ODA 사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지만 농업분야는 농림축산식품부에서도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2000년대 중반부터 ODA 사업에 눈을 떠 지금은 자체 예산만 1600억원에 이르고 있다. 지난해에는 아프리카 6개국을 대상으로 케이(K)-라이스벨트 사업이 시작되면서 그동안 동남아시아에 집중된 ODA 사업이 아프리카로 영역을 확대하며 새로운 협력의 장을 열고 있다.

이처럼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협력의 기회가 펼쳐지는 만큼 사업이 좋은 결실을 맺어야 하는 것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개발도상국의 환경은 우리와는 다른 점이 많아 실제로 사업을 시행하면서 문화의 차이, 상·관행의 차이, 복잡한 행정절차 등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이 많다.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수원국의 요구와 상황에 맞춘 맞춤형 지원으로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ODA 사업이 엄청나게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서는 담당기관의 조직과 인력도 늘려나가야 한다. 앞으로 우리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질수록 ODA 사업을 통한 개도국과의 협력은 늘어나고 이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시장을 찾고 교역과 투자를 늘려나가게 된다. 과거 우리 농업의 가장 큰 난제가 방어적인 ‘협상’이었다면 이제는 적극적으로 우리 농업을 세계에 펼쳐나갈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다.

배종하 전 FAO 베트남사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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