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3법 개정안, 통합정신 살려야

2025-07-21

이재명 대통령은 한 달 반 전 취임사에서 “통합은 유능의 지표이며, 분열은 무능의 결과”라고 밝히며 통합을 국정운영의 핵심 기조로 천명하였다. 국민도 국정 전반에서 그러한 통합이 구체적으로 실현되길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통합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두 개의 법안(남북관계발전법과 방송 3법 개정안)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문제는 이 두 법안이 담고 있는 ‘국민 통합’의 원리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은 접경 지역에서 대북 전단살포를 금지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탈북민의 표현 자유를 근거로 이를 허용했지만, 그 결과 북한의 오물풍선과 전단이 오가는 긴장이 고조됐다. 쟁점은 전단살포가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지, 그리고 타인의 자유와 안전을 침해하지는 않는지이다.

방송인 지배력 강화한 방송 3법안

공영방송 편향성 논란 커질 수도

표현의 자유 보장해야 통합 가능

특정 세력·정당 유불리 넘어서야

정치철학자 존 롤스는 표현의 자유도 공동이익(common interest)을 위해 예외적으로 제한될 수 있다고 하였다. 구성원 모두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다면 제한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또한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시민의 기본적 자유를 규제해서는 안 됨을 의미한다. 대북 전단 금지는 단순히 특정 표현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안전과 군사적 긴장 완화라는 공동이익을 보호하는 조치다. 모두의 안위가 위협받는 상황이라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양심의 발로라는 탈북단체의 주장은 이해되지만, 그 자유가 모두의 생존을 위협한다면 공동이익을 침해하는 것이다. 누구나 주먹을 휘두를 자유는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얼굴을 다치게 할 권리는 없다.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은 남북 화해 공존을 위한 포석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공동이익을 위한 표현의 자유 제한이라고 볼 수 있다.

방송 3법 개정안은 통합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개정안은 공영방송 3사(KBS·MBC·EBS) 이사회 정원 확대 및 추천 기관 다양화, 국민참여형 사장 추천제, 보도 책임자 임명동의제(공영 3사·YTN·연합뉴스TV), 노사 동수 편성위원회 의무화(공영 3사·종편·뉴스 전문 채널) 등을 담고 있다. 이 조항들은 공영방송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내용이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그간 대통령이 행사했던 사장 임명권을 방송 종사자, 언론노조에 사실상 이관한 점이다. 이 법에 따르면, 방송 종사자와 노동조합은 앞으로 사장선임과 편성 제작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언뜻 보면 언론 자율성을 확대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헌정질서가 요구하는 견제와 균형의 원칙에 비춰볼 때 우려할 점이 없지 않다. 공영방송의 공정성은 직역 이익에 종속될 가능성이 커졌다. 안 그래도 공영방송은 지금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편성권과 제작권, 인사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된다면 그것은 또 어떻게 견제하고 통제할 것인가. 100인 이상의 사장 추천위원회나 학회, 시청자 위원회, 변호사회 같은 이사 추천 기관의 대표성도 명확하지 않다. 관련 기관은 정파성 시비에 휘말릴 것이다. 민영화된 YTN에 대해 사장후보추천제를 의무화하고 보도 책임자 임명동의제를 시행토록 하는 것도 위헌논란이 예상된다.

공영방송은 시민 모두의 자산이며, 누구의 통제도 받아선 안 된다. 그 존재 이유는 권력이나 이념, 직역의 지배에서 독립해 시민의 자유를 평등하게 보장하는 데 있다. 이번 방송 3법 개정안은 이런 가치를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 지금처럼 사회적 합의가 모자란 상태로는 공영방송의 위상이 단단해질 수 없다. 방송 종사자들은 그간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권력의 후견주의를 비판하며 제작 자율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제작 자율성은 좋은 방송을 만들기 위한 수단일 뿐, 그 자체가 공영방송의 가치와 철학이 될 수 없다. 방송인의 전문직주의나 자율성은 자유민주적 질서와 공화주의 틀 속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임의적·자의적 지배를 통제하기 어렵다. 공영방송은 그것이 시민의 자유를 평등하게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이라 믿기 때문이다. 권력이나 이념, 직역에 독립적인 공영방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공영방송 지배구조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KBS 한국방송’ 로고 송을 들을 때면 모골이 송연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정치권력의 후견주의를 방송인의 자율성으로 대체한다고 해서 편향성 논란과 혼란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통합은 제도 변화가 아니라, 공감 가능한 가치를 실천하는 데서 이뤄질 수 있다. 표현의 자유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져야 한다. 공영방송의 변화는 시민의 표현 자유를 높이는 공감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게 타당하다. 시민의 표현 자유가 다양하게 구현될 수 있을 때, 통합은 비로소 가능하다. 방송 3법 개정안에 특정 세력이나 정당의 유불리를 넘어 모두의 자유 증진을 겨냥한 가치와 철학이 담겨있다고 보기 어렵다.

손영준 국민대 미디어 광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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